좀 촌스러운가. 중국 소설가 위화는 40년째 가족에 대한 소설을 쓴다. 시대적 배경은 주로 1900년대다.
피를 팔아 가족을 부양하는 남자의 이야기를 담은 <허삼관 매혈기>, 한 가족이 문화혁명이라는 역사적 소용돌이를 어떻게 통과하는지 그려낸 <인생>, 진정한 가족의 의미를 묻는 <제7일>…. 최근 국내 출간된 <원청> 역시 잃어버린 가족을 찾아 헤매는 이야기다.
퀴어, 여성의 몸 등 오늘날 문학이 주목하는 건 가족보다는 개인이다. 대서사보다 짧은 소설, SF 소설과 웹소설이 유행인 요즘, 그의 소설은 왜 꾸준히 읽힐까. 1992년 출간된 <인생>은 올해 중국에서만 80만부, 30년간 총 2000만부 팔렸다. 그는 매년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된다. 모옌, 옌롄커와 함께 중국 대표 현대 작가로 꼽힌다.
위화의 소설에서 가족은 시대의 단층이다. 학령기 문화대혁명을 겪은 위화가 그려내는 1900년대 소설은 중국 근현대 미시사에 가깝다. 시대의 소용돌이가 개인을 어떻게 할퀴고 지나가는지 그의 소설은 보여준다.
위화에게 가정은 혈연·관습이 지배하는 곳이라기보다는 가장 개인적인 공간이다. '통제 사회' 중국에서 그의 가족 소설은 더욱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개혁개방 전까지 중국인들은 오직 집안에서만 자신을 드러낼 수 있었다.
위화는 지난 15일 서울 광화문 교보컨벤션홀에서 열린 대산문화재단의 '2022 세계 작가와의 대화' 강연에서 "20세기 중국 역사는 중국 작가에게 있어서 반드시 써야 하는 이야기"라며 "이 이야기들을 통해서 '중국인들이 정말 힘들게 이런 시기를 겪어왔구나' '인생을 이렇게 힘들게 살아왔구나' 하는 걸 쓰고 싶었다"고 했다.
어떻게 보면 부끄러운 역사다. <원청>만 해도 그렇다. 주인공 '린샹푸'가 딸을 낳고 사라진 아내 '샤오메이'를 찾는 여정이 주된 이야기지만, 무정부 상태에서 토비(도적떼)가 날뛰며 평범한 사람들이 총칼을 들고 맞서 싸워야 하는 상황을 다뤘다. 왜 이 아픈 역사를 들춰낼까.
위화는 "신해혁명과 그 이후의 시기가 현재의 중국을 형성하는 데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시기라 생각한다"며 "<원청>의 등장인물들은 특수한 시기를 산 인물들, 스스로 자기 운명을 개척하려는 의지와 능력이 있는 인물들"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원청>을 1998년부터 구상하기 시작했다고 했다. 그간 살펴본 자료를 요약한 메모만 노트 7권 분량. 소설은 23년간 쓰고 고친 결과물이다.
소설 속 샤오메이는 린샹푸에게 자신이 '원청'이라는 도시 출신이라고 말한다. 세상에 없는 도시 이름을 지어낸 것이라는 걸 린샹푸는 뒤늦게 깨닫는다. '원청'이라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공간, 도달할 수 없는 지점을 향해 린샹푸는 유랑한다.
위화는 "원청이 의미하는 건 희망, 아름다움을 끊임 없이 추구하는 인간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고 했다.
"인간은 끝내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 찾지 못하죠. 왜냐하면 가장 아름다운 걸 손에 넣었다고 생각하다가도 '더 아름다운 게 있지 않을까?' 찾게 되거든요. 그렇지만 그 아름다움을 찾아 헤매는 과정에서 적지 않은 아름다움을 계속 만날 수 있죠."
위화에게 원청은 문학이다. "40년간 나의 작가 인생도 원청을 찾는 과정이었다"고 그는 말한다. "제게는 위대한 작품을 남기는 일이 원청을 찾는 일 같아요. 아직까지 그런 작품을 못 쓴 것 같고, 아마 죽을 때까지 못 쓸 수도 있지만, 그래도 계속해서 쓰고 싶습니다."
이번 소설에서 그는 2부를 '샤오메이'의 시점으로 담았다. 그의 작품 중 이례적으로 여성 등장인물의 목소리로 사건을 서술했다. 그는 이번 작품에서 가장 애착을 갖는 인물로 샤오메이를 꼽기도 했다.
위화는 "뒷부분 샤오메이 부분이 가장 안 풀려서 애를 먹었다"며 "아내에게 샤오메이의 이야기를 보여주며 수정을 반복하다 '비로소 내가 샤오메이를 사랑하게 됐구나'라고 느꼈을 때 아내에게 보여주지 않고 출판사에 원고를 보냈다"고 했다.
최근 중국은 코로나19 방역 논란, 백지시위 등으로 혼란의 시기를 통과하고 있다. "중국의 현실은 소설보다 황당하다." 과거 인터뷰에서 말했던 그의 생각은 그대로일까.
위화는 "여전히 현실이 소설보다 더 황당하다"고 했다. 이유를 물었더니 긴 침묵 끝에 이렇게 답했다. "같은 중국이지만 상하이와 베이징 봉쇄 조치에 대응하는 사람들의 방식이 정반대였습니다. 상하이는 거버넌스 수준이 높아 시민들이 지방 정부 정책을 믿었지만, 베이징은 시 정부가 하는 말을 시민들이 믿지 않죠."
그는 "베이징 약국마다 약이 다 동났다"면서도 "인터넷에 봉쇄 관련 웃긴 농담이 많이 올라오는데, 중국인들은 힘든 일이 있어도 유머로 넘기려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위화는 매년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발표 즈음이면 유력 후보로 거론되곤 한다. 노벨문학상이라는 영광을 누리고 싶은 욕심은 없을까. 그는 "노벨문학상은 그저 굉장히 큰 광고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노벨문학상을 받으면 전 세계 사람들이 수상 작가 이름을 알게 되지 않나. 그런데 나는 아직 한국에서도 상을 받은 적이 없는데 어떻게 노벨문학상을 이야기하겠나" 하는 농담으로 답을 대신했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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