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 돈을 멋대로 유용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는 FTX는 파산절차를 밟고 있다. FTX의 설립자인 샘 뱅크먼 프리드(사진)는 '미국 역사상 최악의 금융사기꾼'이라는 손가락질을 받으며 검찰의 수사선상에 올랐다.
가상자산 시장 최후의 보루로 여겨졌던 바이낸스도 각종 의혹에 휩싸였다. 단 2일 만에 거래소에서 7조원이 넘는 돈이 순유출됐다. 세계 1·2위 거래소가 잇따라 휘청이며 가상자산 시장에 그야말로 최악의 위기가 닥친 셈이다.
그러나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는 크게 동요하지 않는 분위기다. 국내 거래소는 수 년 전부터 은행가상계좌 시스템이 뿌리내려져 고객 자금과 거래소 자금이 철저히 분리돼 FTX와 같은 사태가 발생할 가능성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FTX 사태로 엄청난 규모의 다국적 자본들이 '안전한 거래소'를 찾아 떠돌아다니고 있는 지금,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에 드디어 '반격의 기회'가 찾아왔다.
빗썸과 업비트는 세계 1위를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다른 국내 거래소인 코인원도 당시 세계 10위권 거래소로 진입하며 성장세를 가속화했고, 코빗과 고팍스도 글로벌 상위권 거래소로 올라서며 경쟁에 가세했다.
그러나 폐쇄적인 국내 정책으로 인해 글로벌 수위를 다투던 국내 거래소들의 경쟁력은 순식간에 무너졌다. 2017년 문재인 정부가 △가상자산공개(ICO)금지 △외국인 투자 금지 △가상자산 거래소 신규 가입자의 은행 계좌 연동 금지 △정부 관계자의 거래소 폐쇄 발언 △가상자산 마진거래의 도박장 개설죄 적용 등 강력한 가상자산 거래 억제 정책을 펼친 결과다.
이에 2018년부터 세계 1위 거래소는 중국계 거래소 바이낸스가 줄곧 차지해 왔다. 특히 이때부터 국내에선 사실상 금지된 '가상자산 선물 상품' 거래가 인기를 끌면서 해외 거래소로 자금 이동이 시작되자 이같은 현상은 더욱 공고해졌다. 2019년에 혜성처럼 등장한 FTX도 다양한 가상자산 선물 상품과 빠른 속도를 내세우며 세계 2위 거래소를 꿰찼다.
국내 거래소에 기관 및 외국인들의 계좌 개설이 금지된 것은 지난 2017년 12월 홍남기 전 국무조정실장이 발표한 '가상통화 관련 긴급 대책'이 나온 이후다. 이후 2018년 1월 박상기 전 법무부장관(사진)은 "가상자산 거래소를 폐쇄하겠다"며 가상자산 거래를 금지화하는 법안을 준비하고 있다고 공포했다.
이에 국내 거래소에서는 기관과 외국인들의 자금이 순식간에 빠져나갔고 불법·탈법적인 루트를 제외하고는 더 이상 해외에서의 자금 유입이 불가능해지고 말았다. 이때부터 국내 가상자산 시세와 해외 가상자산 시세가 따로 놀게 되면서 '김치프리미엄'이라는 단어가 본격 등장했다.
당시 국내에선 가상자산 수요가 폭증했는데, 외국인 및 기관 투자 금지 정책으로 인해 해외에서 가상자산 공급이 되지 않았다. 이에 국내 투자자들은 해외보다 비싼 가격에 가상자산을 구매할 수밖에 없었다. 이 차익은 탈법적 루트로 가상자산을 국내에 들여오고 현금으로 환전해 빼간 '환치기 세력'이 고스란히 가져가게 됐다.
아이러니한 것은 FTX 거래소의 설립자 샘 뱅크먼 프리드가 2019년 거래소 설립 전까지 이러한 '김치프리미엄' 환치기를 이용해 막대한 자산을 형성했다는 것이다. 이전 정부의 가상자산 폐쇄정책이 역설적으로 '최악의 금융사기'로 끝난 FTX 거래소의 설립 자금을 대준 셈이다.
이러한 국내 거래소 내 외국인 투자 금지 정책이 유지되는 사이, 해외 거래소와 국내 거래소의 격차는 점점 커졌다. 코스피, 코스닥 시장에서 외국인 투자를 금지한 셈이니 이는 당연한 결과였다.
국내 거래소들도 뒤늦게 별도 해외 법인을 설립하며 나름 해외 사업 확장을 위해 노력하긴 했다. 그러나 당시 정부는 가상자산 거래소 사업을 영위하는 법인의 외화 송금을 원천 봉쇄했다. 이에 국내 거래소들은 해외 법인으로 자금을 보낼 수 없게 됐고, 해외 사업은 사실상 유명무실해지고 말았다.
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FATF)에서 요구하는 신원인증 절차를 지키면서 기관 및 외국인 투자자들이 국내 거래소에서 거래할 수 있도록 문을 열어준다면 '안전한 거래소'에 목마른 수많은 투자자들의 자금을 국내 시장으로 유인할 기회가 될 것이다.
이들이 국내 거래소에서 거래하면서 경제적 부가가치를 만들어내고, 여기에 고용 창출과 세수 증대에도 기여한다면 이제라도 빗장을 풀지 말아야 할 이유가 없다.
디지털 자산 시대는 눈앞으로 다가왔다. 전통 금융자산과 가상자산의 경계는 점차 희미해지고 있다. 주식도 부동산도 채권도 토큰화돼 전 세계 거래소들을 떠돌기 시작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우리가 글로벌 거래소를 육성해 '디지털자산 종주국'으로서의 입지를 빠르게 다져 놓는다면 저성장의 늪에 빠진 우리 경제에 '외화 벌이'를 해줄 수 있는 새로운 성장 동력이 되어줄 것이다.
[블루밍비트 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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