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전략적 접근 필요한 우크라이나 전쟁

입력 2022-12-20 17:23   수정 2022-12-21 00:25

강대국과 약소국 간의 전쟁은 약소국이 강대국의 위세를 인정하고 스스로 무릎 꿇지 않는 한 결과를 예단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광대한 영토를 가진 대제국이 일개 중소국과의 전쟁에서 패해 몰락한 사례는 역사상 수없이 많다. 고대 동방의 대제국 페르시아는 그리스 변방의 작은 나라 마케도니아에 멸망했고, 기원전 3세기 지중해 전역을 지배한 해양제국 카르타고는 전투함이 한 척도 없는 신흥국가 로마와의 전쟁에서 패해 몰락했다. 대제국이 전쟁에서 패하면, 이는 자신의 몰락에 그치지 않고 새로운 세계질서와 국제체제를 탄생시키곤 했다.

핵무기로 무장한 초강대국도 예외가 아니었다. 냉전 시대의 미국은 베트남과의 10년 전쟁에서 6만 명의 전사자를 냈으나, 결국 한계성을 깨닫고 “아시아는 아시아인의 손으로” 방어하라는 닉슨 독트린을 남기며 물러나 인도차이나 전체의 공산화가 이뤄졌다. 1979년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한 공산주의 종주국 소련은 그 ‘제국의 무덤’에서 10년간 국력을 소진한 끝에 만신창이가 돼 철수했고, 그 여파로 2년 후 국가가 공중분해돼 세계지도에서 사라지는 운명을 맞았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점차 그런 과거 역사 속 전쟁들과 비슷한 성격의 전쟁이 돼 가고 있다. 쉽게 승리하리라 예상했던 러시아는 10개월이 넘도록 ‘세계 2위 군사대국’의 허상만 드러낸 채 수세에 몰리고 있다. 핵무기 사용 위협도 먹혀들지 않고 있어, 이제 러시아는 ‘제국의 몰락’을 각오해야 할 중대한 위기를 맞고 있다. 무기 재고 고갈로 100년 전 1차대전 때 쓰던 무기까지 등장한 상황이다. 러시아군 전사자 수는 개전 후 불과 10개월 만에 미국의 대베트남 10년 전쟁과 21세기 이라크 전쟁, 아프간 전쟁, 그리고 옛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10년 전쟁의 전사자를 모두 합친 숫자에 육박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경기 침체, 에너지 대란, 곡물가격 급등 등 세계 경제에 다양한 악영향을 미치고 있는데, 국제 정치적으로는 그 영향이 더욱 심대해 미국-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진영과 중-러 진영 사이의 범세계적 신냉전체제를 성큼 앞당기는 결과를 초래했다.

미국은 차제에 우크라이나에서의 대리전쟁을 통해 러시아 군사력을 재기 불능 수준으로 몰락시키려는 기색인데, 이는 동아시아의 미·중 대결과 한반도 안보 지형에도 몇 가지 전환기적 변화를 초래할 전망이다. 첫째, 러시아 군사력이 국제적 경제제재로 장기간 회복되지 못할 경우, 중-러 진영은 범세계적 세력 균형에서 열세를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둘째, 미·중 패권 경쟁에서 첨단무기 공급을 러시아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중국 진영의 군사력 증강에 적신호가 예상된다. 셋째, 미국 진영의 우크라이나 지원에 따른 러시아의 군사적 몰락은 중국의 대만 침공과 대미 군사대결 의지를 현저히 약화시킬 것이다. 넷째, 이런 상황 전개는 중·러를 후견국으로 둔 북한의 대남 군사도발 의지 약화에도 크게 기여할 것이다.

그 밖에도 우크라이나 전쟁은 한국산 첨단무기가 세계시장에 진출하는 결정적 계기를 조성했고, 우리 국민이 중-러-북한-이란 연합세력의 반평화적, 반문명적 실체를 명확히 인식하는 좋은 기회도 됐다.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침공을 극복할 수 있도록 최선의 지원책을 강구하는 것은 우리의 안보와 이익을 위해서도 중요하다. 정부와 국민이 우크라이나 전쟁에 보다 능동적, 전략적 시각으로 접근하는 지혜가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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