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말 1만7710가구였던 전국 미분양 주택이 올 10월 말 4만7217가구로 세 배 가까이 불어났다. 수도권만 보면 같은 기간 1509가구에서 7612가구로 다섯 배 급증했다. 업계에서는 11월 전국 미분양 규모가 5만 가구를 웃돌았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여기에 오피스텔 생활숙박시설 등을 포함하면 7만 가구를 넘었을 가능성이 높다. 16만여 가구에 달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와 비교하면 아직은 적은 수준이다. 하지만 금리 인상 속에 미분양이 빠르게 늘어 내년에는 전국 곳곳에 ‘빈집’이 급증할 것이란 공포감이 커지고 있다.
상황이 급변하자 국토교통부는 한 달 단위로 파악하던 아파트 미분양 규모를 15일 단위로 단축하기로 했다.
기준금리 인상으로 부동산 시장이 위축되고 집값이 하락할 것이라는 인식이 강해지면서 수도권 주요 지역에서 청약 당첨자가 계약을 포기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수도권 일부 지역이 2년 만에 ‘미분양 관리지역’으로 지정된 이유다. 미분양 주택이 증가하면 사업 주체인 시행사는 물론 시공사와 지역 경제에 충격이 불가피하다.
미분양 관리지역은 미분양 주택 수가 500가구 이상인 시·군·구 중 미분양 증가, 미분양 물량 해소 저조, 미분양 우려 등의 요건 중 한 개 이상을 충족하는 지역을 의미한다. 미분양 관리지역에서 아파트를 공급하기 위해서는 HUG의 예비심사(사전심사)를 통해 분양보증을 받아야 한다.
업계에서는 ‘악성 재고’로 불리는 준공 후 미분양 물량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다. 대부분 건설사는 아파트를 짓기 전에 선분양 형태로 공급한다. 토지를 사면서 인허가를 마치고 착공 신고 후 분양에 나선다. 사실상 분양 시점에 아파트 공사를 시작하는 것이다. 지난 몇 년간 분양시장이 호조를 보이면서 계약 후 3개월 내 초기 분양시장에서 완판하는 사례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최근 미분양 물량이 급증했을 뿐 아니라 준공 후 미분양 주택도 늘고 있다. 일반적으로 주택 경기가 침체기에 접어들면 건물이 준공되고 나서도 계약자가 나타나지 않아 준공 후 미분양 물량이 발생한다. 10월 전국의 준공 후 미분양 주택은 7777가구, 수도권은 1041가구로 집계됐다. 수도권은 작년 말(601가구) 대비 두 배 가까이로 늘었다.
수도권 대형 브랜드 아파트 역시 미분양 논란에서 예외가 아니다. 청약에 당첨된 뒤 계약을 포기하면 10년간 재당첨 기회가 사라진다. 이 같은 불이익을 감수하고라도 계약을 포기하는 것이다. 경기 의왕시 A단지는 1순위 경쟁률이 5 대 1을 웃돌았지만 500여 가구가 미계약으로 남아 무순위 청약을 진행 중이다. 서울 오류동 B단지도 140가구 중 120여 가구가 무순위 청약 물량으로 나와 중도금 무이자 등의 혜택을 내걸었다.
부동산 리서치업체 리얼투데이가 한국부동산원 청약홈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올해 1월부터 지난달(청약 접수일 기준)까지 수도권에서 무순위 청약으로 나온 아파트 미계약 물량은 7363가구로, 작년 같은 기간(2698가구)과 비교해 2.7배 증가했다. 같은 기간 서울만 보면 371가구에서 1573가구로 네 배 이상 늘었다. 아파트 미계약 물량은 두 번 이상 무순위 청약을 받은 단지의 가구 수를 중복으로 집계했다. 무순위 청약은 일반청약 후 부적격 당첨 또는 계약 포기로 계약이 취소되거나 해제된 물량에 대해 청약을 받아 무작위 추첨으로 당첨자를 뽑는 것을 말한다. 집값 상승기에 ‘로또 청약’으로 간주된 이른바 ‘줍줍’(무순위 청약)이 외면받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내년부터 무순위 청약의 주거지 요건을 폐지하기로 했다. 연말을 앞두고 건설사들이 밀어내기 분양을 서두르고 있어 미분양 물량은 더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당시 급등한 집값은 숨 고르기 상태였지만 정부의 대출 규제 등으로 수요가 급감했다. 노무현 정부가 2007년 민간 주택에도 분양가 상한제를 적용한다고 발표하면서 건설사들이 제도 시행 전 밀어내기에 나섰다. 대부분 전용 85㎡를 초과하는 중대형 아파트였다. 여기에 이명박 정부가 ‘반값 아파트’로 불린 보금자리주택을 150만 가구 공급하기로 하면서 기존에 나온 분양 아파트는 찬밥 신세가 됐다. 이후 부동산 시장은 5년 가까이 침체에 접어들었다.
2008년 다수 현장에서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만기가 돌아오고 제2금융권에서 만기 연장에 난색을 보이는 일이 다반사였다. PF 대출 부실로 30여 개 저축은행이 문을 닫았다. 미분양과 자금난에 시공능력평가 100위 내 중견 건설사 중 45곳이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 등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당시 대형 건설사도 수조원대에 달하는 미분양 물량으로 존폐 위기에 처했다.
이명박 정부는 전국에 남아도는 미분양을 해소하기 위해 2008년 ‘6·11 지방 미분양 해소 대책’을 발표했다. 일시적 1가구 2주택자의 비과세 기간 2년 연장, 취득세율 50% 인하, 분양가 10% 인하 주택의 담보인정비율(LTV) 60%에서 70%로 상향 등이 주요 내용이었다.
일각에서는 최근 미분양 물량은 2008년의 3분의 1 수준이어서 아직 크게 우려할 만한 수준은 아니라고 말한다. 하지만 아파트값이 하락하는 데다 미분양 물량이 빠르게 늘어나는 게 문제다.
문제는 이 기간 분양보증사고로 인해 HUG가 채무를 대위변제한 뒤 처분권을 취득한 환급사업장이 총 6건(3542억원), 공매도가 총 25건(686억원) 발생했다는 점이다. 분양 경기 전망이 좋지 않은 데다 최근 분양시장이 급랭하면서 미분양 사업장이 급증하고 보증 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미분양 증가에 따른 주택건설경기 악화로 자금력이 약한 중소건설사들이 연쇄 부도를 맞을 수 있다.
미분양 증가는 곧바로 공사 현장에 악영향을 미친다. 아파트 공사비는 대부분 분양자의 계약금과 중도금으로 충당하는 구조다. 공정률에 비례해 분양률이 높아지지 않으면 공사비 충당이 어렵다.
올 들어 대부분 건설 현장은 공사비 급등으로 현장 공사에 차질을 빚기 일쑤다. 업계에서는 건자재와 인건비 등 공사비가 1년 전에 비해 30%가량 뛴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건설사들이 공사를 해도 수익을 낼 수 없는 처지에 내몰린 것이다. 여기에 미분양까지 발생하면 자금 사정은 더욱 꼬일 수밖에 없다. 건설사가 외상 공사를 해야 한다는 얘기다. 한두 현장이야 어떻게 끌고 갈 수 있지만 현장이 많을 경우 공사 진행이 불가능하다. 미분양 주택이 1만 가구에 육박하는 대구에서는 사업 지연으로 인한 자금 손실과 이자 부담을 감당할 수 없어 무리해서 사업을 진행하는 악순환이 되풀이되고 있다. 한 중견 건설사 대표는 “현장에서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으로 안전관리에 신경 써야 하는 데다 급등한 공사비와 미분양 리스크까지 덮쳐 한 치 앞이 안 보인다”며 “미분양은 사실상 준공을 가로막는 최대 장벽”이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건설사 대표도 “내년까지 부동산시장 침체가 예상돼 미분양을 어떻게 해소하느냐가 건설사 존폐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했다.
업계에서는 향후 미분양과 입주 지연, 건설사 연쇄 부도가 발생하면 수습이 어려워지는 만큼 선제적인 경기 회복 방안 마련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이를 위해 미분양 주택을 매입하면 취득세를 감면해주고, 1주택자가 미분양 아파트를 매입할 때 2주택자에서 제외해 양도소득세를 중과하지 않는 방안을 요구하고 있다.
이와 함께 업계에서는 소형 아파트 등록임대사업 허용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국토부는 저렴한 장기 임대주택이 안정적으로 공급되도록 소형 주택 중심으로 관련 방안을 연말까지 마련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공공에서 미분양 주택을 매입해 건설사에 유동성을 지원하는 방안도 필요하다는 게 업계 주장이다. 미분양 물량을 LH(한국토지주택공사)에서 청년, 신혼부부, 다자녀 가구 등에 공급하기 위해 매입하는 주택으로 활용하자는 것이다. 정부는 앞서 2008년 금융위기 당시 미분양 물량이 쌓이자 ‘환매조건부 매입’이라는 이름으로 건설 중인 미분양 주택을 현행 공공매입 가격 수준으로 매입하고, 준공 이후 사업 주체에 환매한 적이 있다.
업계에서는 이 밖에 비규제지역 전매제한 기간 완화, 주택사업자의 미분양 주택 담보 자금 조달 허용, 주택담보대출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완화 등의 정책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김진수 기자 tru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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