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홍콩중문대 정문 앞에는 형광 조끼를 입은 공안(경찰)들이 즐비했다. 코로나19 방역을 위해 출입자를 통제한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중문대 학생들의 해석은 달랐다. 반(反)정부 시위를 억제하려는 조치란 것이다. 홍콩중문대 석사과정 1학년인 낸시 룽(28)은 “더 이상 중국처럼 변하는 홍콩에서 살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급감하는 홍콩 인구
홍콩 곳곳에서 중국 당국의 손길을 확인할 수 있었다. 관공서가 밀집한 길목에는 철조망이 설치됐고, 처벌이 두려워서 한 곳에 12명 이상이 모이는 것도 볼 수 없다. 삼엄한 분위기 속에 상업단지도 쇠락하고 있다. 고급 갤러리, 명품 업체 등이 즐비해 ‘홍콩의 명동’으로 불리는 센트럴 퀸스웨이에는 공실을 알리는 플래카드가 곳곳에 펼쳐져 있다. 중국이 2020년 6월 홍콩 국가보안법을 도입한 뒤 달라진 모습이다.이런 상황이 싫어 홍콩 주민들은 영국, 호주 등으로 떠나고 있다. 인재로 먹고살던 홍콩이 무너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홍콩 인구는 올해 역대 가장 적은 수준이다.
홍콩 정부가 지난 8월 발표한 ‘2022년 6월 기준 인구’에 따르면 729만1600명을 기록했다. 지난해보다 1.6% 감소한 수치다. 홍콩이 인구를 집계한 1961년 이후 최대 감소 폭이다. 중국이 아닌 다른 나라로 이주한 홍콩 주민은 11만3200명에 달했다. 국가보안법이 시행된 뒤 홍콩을 빠져나가는 주민 행렬이 불어났기 때문이다. 외신에선 이를 두고 ‘헥시트(홍콩+엑시트)’란 표현을 쓰고 있다.
지난 2년간 ‘홍콩의 중국화’ 속도가 더 빨라졌다. 9월부터 모든 초·중·고교에서 중국에 대한 ‘애국주의’ 교육을 하고 있다. 모든 대학에선 ‘국가안보 시험’을 졸업 요건으로 적용할 방침이다.
삶의 질은 악화했다. 집값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지난해 세계주택보유능력조사(DIHAS)에 따르면 홍콩에서 한 가정이 집을 마련하려면 지출 없이 평균 연봉을 20.9년 모아야 한다. 집값과 소득 수준의 불균형이 세계에서 가장 크게 벌어진 곳이란 지적이 나온다.
성장동력까지 상실
젊은 계층이 잇따라 홍콩을 등지자 성장 엔진이 꺼지고 있다. 홍콩은 아시아 금융허브의 지위도 올해 싱가포르에 넘겨줬다. 인구가 줄며 경제성장에도 적신호가 켜졌다. 홍콩 정부는 올해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을 -3.2%로 전망했다. 홍콩의 경제성장률은 2019년(-1.7%)과 2020년(-6.1%)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완화된 지난해(6.4%) 크게 반등했지만 다시 꺾일 것으로 예상된다.금융경쟁력 척도인 국제금융센터지수 평가에서 지난 9월 홍콩은 작년보다 한 단계 내려간 세계 4위를 기록했다. 싱가포르는 세계 3위에 오르며 아시아 1위에 등극했다.
경쟁국인 싱가포르에 영영 밀릴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홍콩은 낮은 세율과 개방정책을 펼쳤다. 홍콩의 개인 소득세율은 15%로 싱가포르(22%)보다 낮은 수준이다. 법인소득세도 16.5%로 싱가포르(17%)를 밑돈다. 하지만 이런 낮은 세율로 인재와 기업을 유치하겠다는 계획은 중국의 개입으로 무산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위기를 느낀 홍콩은 10월 인재 발굴 및 투자 유치에 관한 정책을 발표했다. 세계 100위권 내 대학 졸업생에겐 취업비자를 무조건 발급해주기로 했다. 또 홍콩투자청은 ‘공동 투자 펀드’에 300억달러를 출자해 해외 투자자와 공동 투자할 방침이다. 통유잉 홍콩중문대 사회과학대 부학장은 “인구 감소 위기에 처한 일본과 한국, 싱가포르 등도 인재 유치에 나설 수 있어 홍콩의 정책이 성공할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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