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채연의 딜 막전막후] 사모펀드 신뢰 논란 일으킨 베어링PEA의 인수 계약 파기

입력 2022-12-20 17:59   수정 2022-12-21 00:59

홍콩계 사모펀드 운용사 베어링PEA가 지난 8일 세계 1위 폴리이미드(PI) 필름 회사 PI첨단소재(사진) 인수 계약을 파기하자 투자은행(IB) 업계는 충격에 빠졌다. 6개월 전 롯데케미칼, 프랑스 알케마 등 쟁쟁한 인수 후보들을 제치고 매매 계약에 성공했는데, 거래 종료일을 불과 20여일 앞두고 돌연 파기를 선언하면서다. 거래는 중국 경쟁당국의 기업결합심사만 앞두고 있었다. 곧 승인이 날 것이란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업계에서는 인수 발표 후 PI첨단소재 주가가 급락하자 베어링PEA가 일찌감치 계약 파기를 결정한 것으로 보고 있다.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마지막 순간까지 기다리다가 ‘파기 카드’를 터뜨렸다는 얘기다. 수십조원의 자금을 굴리는 글로벌 사모펀드(PEF)마저 의문스러운 타이밍에 계약을 파기하면서 “당분간 기업 인수합병 거래는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는 자조 섞인 얘기도 나온다.
의문의 타이밍에 계약 파기
베어링PEA는 지난 6월 7일 글랜우드PE가 보유한 PI첨단소재 지분 54.07%를 1조2750억원에 인수하는 주식매매계약(SPA)을 맺었다. 주당 인수가는 약 8만원이었다. 계약체결일 주가 5만5000원에 비해 60%의 프리미엄이 붙었다. 하지만 주가는 계약 체결 나흘 만에 3만원대로 떨어졌다. 인수 가격에 비해 3분의 1토막이 난 셈이다. 주가는 이후에도 3만원 안팎을 횡보했다. 20일 종가 기준 주가는 3만150원이다.

베어링PEA는 주가 급락 이후 ‘손절’ 타이밍을 저울질한 것으로 보인다. 그사이 스웨덴 계열 사모펀드 운용사인 EQT파트너스가 베어링PEA를 인수해 합병한 것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베어링PEA 운용역들이 인수 전에 체결한 거래에 대해 새 주인인 EQT파트너스가 비토한 것이란 관측이다. 속절없이 하락한 주가로 기존 운용역들의 입지는 더욱 좁아졌을 것으로 전망된다. 주당 8만원이라는 밸류에이션의 적정성을 EQT 경영진에 설명하기 어려웠을 것이란 뜻이다.
경쟁력 저하는 누가 책임지나
문제는 파기 타이밍이다. 업계 관계자는 “양측이 합의한 거래 종료일인 올해 말까지 중국 경쟁당국의 기업결합심사가 마무리되지 않으면 베어링PEA는 이를 명분 삼아 거래를 파기할 계획이었던 것으로 보인다”며 “하지만 중국이 승인으로 돌아서는 것 같은 분위기가 감지되자 서둘러 계약을 파기한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거래 파기로 가장 큰 피해를 본 건 PI첨단소재다. 6월 매각 결정 뒤로 회사 성장은 사실상 멈춘 상태였다. 투자 등 중요한 의사결정이 모두 미뤄졌기 때문이다.

현 최대주주인 글랜우드PE는 베어링PEA를 상대로 위약벌 소송을 제기한다는 방침이다. 매각가 1조2750억원의 최대 10% 수준까지 청구할 수 있을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글랜우드는 올 하반기 동안 회사가 입은 피해 규모를 추산해 별도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베어링PEA 측은 “주식매매계약을 체결했지만 선행조건이 충족되지 않아 계약에 의거해 해제권을 적법하게 행사했다”고 지난 14일 공시했다.

이번 사태로 PEF업계의 이미지가 훼손됐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안 그래도 위축된 인수합병(M&A) 거래가 더 위축될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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