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기 다가오는데 갚을 돈 없다"…돈줄 마른 증권가

입력 2022-12-21 13:50   수정 2022-12-21 15:37


일부 증권사가 랩어카운트(종합자산관리서비스)·신탁 계정에서 발생한 환매 요청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레고랜드발(發) 자금시장 경색에 증권사들의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않은 가운데 연말 돈 쓸 일이 많아진 기업들이 당장 유동화가 가능한 증권사 상품부터 해지하면서다. 높아진 금융시장 불안이 이들의 환매 움직임을 부추기면서 증권사들의 불안이 고조되고 있다.
자금 회수 나선 기업들…증권가, 랩·신탁 출금 요청에 '골머리'
21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올 5월 말 기준 153조7614억원까지 불었던 랩어카운트 잔고는 10월 말 133조1782억원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레고랜드 사태에 따른 여파가 본격화된 10월 한 달에만 무려 9조3767억원의 자금이 이탈했다. 이는 2003년 랩어카운트(일임형) 도입 이후 역대 최대 규모다.

지난 1~2개월 전까지만 해도 출금 대란에 여의도 증권가가 비상이 걸린 것으로 전해졌다. 증권사들이 '패닉' 상태에 빠졌다는 얘기가 나돌 정도였다. 금융당국도 긴장 상태로 관리감독 강화에 나섰다. 하지만 12월 들어서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특히 단기금융상품에서 자금 유출이 심화하고 있다는 진단이다. 나날이 높아지는 금리에 기업어음(CP)·회사채 발행이 막힌 기업들이 자금 조달책으로 빠르게 해지가 가능한 단기자금형 랩어카운트나 신탁 계정을 택하면서다.

하지만 증권사들의 유동성이 점차 바닥나면서 고객인 기업들의 환매 요청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 대형증권사는 랩어카운트 상품을 제때 환매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기업들에 환매 연기 요청을 한 증권사도 있는 것으로 안다"고 귀띔했다.
어쩌다 이 지경 됐나

상황이 이렇게까지 심각해진 건 여러 악재가 겹치면서다. 그간엔 롤오버(만기 연장)를 통해 위기를 넘겨왔지만 최근 급격한 금리인상으로 상황이 달라졌다. 전반적으로 자금 시장이 위축되면서 편입 자산을 매도하기 어려워진 것이다. 레고랜드 사태는 유동성 위기에 기름을 부었다. 연말 성과급·연차수당 지급 등을 위한 기업들의 출금 수요도 몰렸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편입 자산 중 유동성이 낮은 자산 비중이 높다는 점도 증권사들이 환매 요청에 대응하지 못하는 원인 중 하나"라고 지적했다.

랩·신탁 상품 비중이 큰 증권사들은 출금 대응에 있어 큰 문제는 없다는 입장이다. A증권사 관계자는 "요즘과 같은 장에서 상품 내 손실 난 자산이 있는 만큼 투자자 손실 방지를 위해 환매를 미루는 게 어떠냐는 식의 권유가 이뤄질 뿐, 당장 갚을 돈이 없어서 환매 지연을 요청하는 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B증권사 관계자도 "시장 상황이 어려운 만큼 다 같이 힘든 건 어쩔 수 없다"며 "환매 요청에 있어 현재까지 딱히 문제는 없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금융당국은 최근까지 대책 회의를 통해 '출금 대란' 문제 관련 대응책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감원 관계자는 "면밀히 보고 있는 사안"이라고 밝혔다.
"만기 미스매치 구조 개선돼야…악재 터지면 유동성 위기 불가피"
전문가들은 금융상품과 편입 자산 간 만기 미스매치(불일치)가 가능토록 허용한 구조부터 개선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상품을 판매할 땐 마치 일정 수준의 이자를 짧은 시간 안에 지급할 것처럼 하지만 정작 운용하는 자산은 장기 회사채·ABCP(자산유동화기업어음) 등 장기 혹은 위험성이 높은 자산이다 보니 손실이 발생할 위험이 크다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롤오버를 통해 상황을 모면해 왔지만 요즘과 같이 악재가 쏟아지는 가운데 환매 요청마저 빗발치면 증권사 유동성 위기가 불가피하고, 이는 또 다른 투자자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우려다.

이효섭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금융사에선 장단기 미스매칭을 이용한 롤오버를 통해 상품을 위험하게 운영해 왔다"며 "랩·신탁 계정에서 장단기 만기가 미스매치 나는 구조는 반드시 개선돼야 한다"고 밝혔다.

신현아 한경닷컴 기자 sha011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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