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복 5차로 도로에서 신호 대기 중인 차들 사이로 갑자기 뛰어나온 무단횡단자가 자동차 운전자에게 사고 책임 상당을 전가하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돼 논란이 일고 있다. '피할 수 없던 사고'라고 주장한 운전자는 경찰로부터 "차 대 사람 사고는 무조건 차에게 과실이 있다"는 말을 들었다면서 억울함을 호소했다.
교통사고 전문 한문철 변호사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한문철 TV'는 지난 21일 '무단횡단자는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경찰과 보험사도 블박(블랙박스)차에게 잘못이 있다고 합니다'라는 제목의 영상을 올렸다.
제보자이자 차량 운전자인 A씨가 공개한 블랙박스 영상에 따르면 그는 지난달 30일 오전 8시께 경기도 용인시의 한 왕복 5차로 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A 씨는 우회전을 위해 바깥 차로로 주행하고 있었고, 안쪽 차로에는 좌회전 신호를 받기 위해 차들이 빼곡하게 늘어서 있었던 상황이다. 이때 멈춰 있던 차들 사이로 남성 B씨가 튀어나오면서 사고가 났다.
사고로 인해 B씨는 손목과 골반에 골절상을 입어 부위별로 각각 전치 6주 진단을 받았다. A씨는 "도저히 피할 수 없었던 사고"라고 토로했다. 또한 사설 업체로부터 교통사고 분석서까지 의뢰해 경찰에 제출했지만, 경찰은 "차 대 사람 사고는 일단 차에 무조건 과실이 있다"고 답변했다고 A씨는 주장했다. 비슷한 사고에서 운전자가 무죄 판결을 받았던 판례를 들고 가도 돌아오는 답변은 달라지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A씨에 따르면 B씨는 현재 본인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A씨의 보험사 역시 사고 현장 인근이 주택가라는 이유로 A씨에게 과실이 있다고 안내했다.
그렇다면 한문철 변호사의 판단은 어땠을까.
한문철 변호사는 무단횡단 사고에서 무조건 운전자에게 책임을 묻는 행태가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제는 이런 사고도 운전자의 잘못 없어야 옳지 않겠나. A씨의 사고는 시속 10㎞로 가야 피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이고, 시속 20㎞로 가도 만만치 않을 것"이라며 A씨의 무과실을 주장했다. 한 변호사는 "저 뻥 뚫린 먼 길을 자동차 한 대씩 지나칠 때마다 멈춰서 무단횡단자가 있는지 확인해야 하나. 하나씩 하나씩 무죄 판결을 쌓아야 한다. 꼭 무죄 판결받길 기원한다"고 덧붙였다.
한 변호사는 이어 "B씨 정도면 중상해는 아니다. 경찰은 A씨가 종합보험에 가입돼 있으니 공소권 없음으로 범칙금 4만원을 내라고 할 것"이라며 "4만원 내고 끝내야 할까. 끝까지 가는 방법은 즉결(심판)이 있는데, 즉결(심판) 보내달라고 해서 무죄 다툼을 하면 된다"고 조언했다.
실시간 방송에서 진행된 시청자 투표에서는 A 씨에게 '잘못이 없다'는 의견이 47명(94%), '잘못이 있다'는 응답이 3명(6%)으로 집계됐다.
도로교통공단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에서 발생한 무단횡단 사고 건수는 총 5896건이다. 부상자 수는 5730명, 사망자 수는 271명에 이른다. 전체 교통사고 가운데 보행 사망자 수는 1018명으로, 4명 중 1명은 무단횡단 사고로 인해 사망한 셈이다.
무단횡단 사고는 꾸준히 감소하는 추세다. 공단이 2015년부터 2020년까지 6년간 무단횡단 교통사고 통계를 분석한 결과, 2020년 사고 건수는 6224건으로, 2019년까지 5년간 연평균 1만1658건 대비 46.6% 감소했다. 사망자 수도 직전 5년 평균치인 609명에서 2020년 337명으로 44.6% 줄었다.
한편, 무단횡단으로 인한 교통사고 책임은 원칙적으로 보행자에게 있지만, 운전자 부주의가 조금이라도 입증되면 형사처벌 대상이 된다. 운전자는 교통사고처리 특례법에 따라 업무상 과실 또는 중과실 치사상의 범죄를 저질렀을 경우 최대 5년 이하의 금고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이 부과된다.
홍민성 한경닷컴 기자 msho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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