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회사 내부통제가 이슈가 된 것은 크고 작은 금융사고 때문이다. 3년여 전 라임 사태로 펀드 환매가 중단되는 일이 벌어졌고, 해외금리연계 파생결합상품(DLF)에서도 불완전판매 문제가 불거졌다. 우리은행 직원이 700억원이 넘는 돈을 횡령하는 일도 터졌다.
현재까지 금융위 중심으로 나온 개선 방안을 보면 금융회사 대표이사에게 총괄 책임을 부여하는 것이 골자인 듯하다. ‘중대 금융사고’ 때는 대표이사에게 책임을 묻겠다는 것이다. 다만 대표이사가 중대 금융사고를 예방·적발할 수 있는 규정이나 시스템을 갖추고 관리 의무를 다했다면 책임을 경감·면책하겠다는 것이 금융위 방침이다.
금융위도 심도 있는 토론을 거쳐 이 같은 방침을 만들었겠지만, 논란을 빚고 있는 중대재해처벌법을 벤치마킹한 것 같아 아쉽다. 금융위 방안의 골격은 중대재해법과 너무나 유사하다. 중대재해법은 사망자가 한 명 이상 발생하는 등의 중대재해에 대해선 경영책임자에게 1년 이상의 징역형을 부과할 수 있는 게 핵심이다. 경영책임자란 최고경영자(CEO)를 가리킨다. 다만 CEO가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 등 법상 의무를 다했다면 처벌 수위가 낮아질 수 있다.
올해 1월 27일 시행에 들어간 이 법은 1년 내내 논란을 낳았다. 중대산업재해에 대한 규정, 의무 노력 등이 너무 모호하다는 것이다. 경제계는 물론 법조계에서도 CEO를 형사처벌하는 것보다 벌금을 높이는 게 더 효과적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결과도 같았다. 고용노동부는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사업장에서 오히려 중대재해가 늘었다는 통계자료를 냈다. 이정식 고용부 장관은 이런 현상이 역설이며, 내년 정기국회에서 중대재해법을 정비하겠다는 로드맵을 내놨다.
금융위는 전임 정부, 전 고용부의 이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현실적인 대안도 있다. 금융회사가 큰 사고를 친 경우 금융위가 상당한 수준의 벌금이나 과징금을 해당 회사에 부과하는 방안이다. 거액의 벌금을 맞은 금융회사의 주주들은 해당 기업 CEO에게 책임을 물을 것이다. CEO가 이를 피하려면 평소 주의 의무와 관리를 잘하는 방법 외에는 없다.
이는 미국이 이미 시행하고 있는 제도다. 미국 재무부는 대량살상무기 관련 국가와 거래한 금융회사에 대규모 벌금을 부과한다. 프랑스 BNP파리바은행은 2014년 90억달러의 벌금을 맞았다. 전 세계 금융회사들이 미국 재무부를 무서워하는 이유다. 한국의 공정거래위원회 같은 각국의 경쟁당국도 거액의 과징금으로 담합을 방지하려 하고 있다. 자본주의에선 ‘주먹’보다 벌금이 더 효과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사회의 권한을 확대하는 방법도 생각해 볼 수 있다. 현재 각 은행 이사회는 내부통제 제도가 미흡하다고 판단되면 은행장에게 개선계획을 요구할 수 있다. 관련 책임자에 대한 징계 요구권도 갖고 있다. 하지만 이사회는 사고 예방 노력을 덜 기울인 은행장을 교체해 달라고 주주에게 요구할 권한은 없다. 내부 견제 장치를 갖추는 게 내부통제를 강화하는 효율적인 방법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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