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회의 직후 양당 원내대표가 ‘합의’와 ‘타협’을 강조하며 예산안 처리에 의미를 부여한 것도 볼썽사납다. 국민은 둘의 밀실 담판에서 어떤 ‘거래’가 오갔는지 그 내막이 궁금하다. 법인세는 왜 전 과표구간에서 1%포인트씩 ‘찔끔’ 인하됐는지, ‘나라의 생사가 달려 있다’던 반도체산업의 설비투자 세액공제율은 어쩌다 야당안(대기업 기준 10%)에도 못 미치는 정부안(8%)으로 합의된 것인지…. 소상히 설명하는 게 유권자에 대한 예의다.
돌이켜 보면 올해 심야까지 이어진 상임위원회 회의가 유난히 많았다. 낮엔 싸우고 밤늦게 일하는 문화는 한국 정치의 고질병이 돼 버렸다. 하나의 패턴인 듯하다. 회의 초반 각 당의 공격수가 나선다. 방송사 등 매체들의 생방송을 의식해 서로를 자극하는 격한 말을 쏟아낸다. 고성이 오가고 정회와 파행이 잇따른다. 제대로 된 회의 시작은 오후 2시를 훨씬 넘기기 일쑤다. 시간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국정감사 기간 상임위 회의가 심심찮게 밤 12시를 넘겼던 이유다. 타협의 실종은 이런 패턴으로 1년 내내 이어졌다.
1주일 뒤면 새해다. 선뜻 희망을 말하기 어렵다. 경기침체의 골이 얼마나 깊을지 가늠할 수 없다. 기업과 가계가 느끼는 위기감은 상상 이상이다. 위기를 버텨내려면 정치도 역할을 해야 한다. 새해엔 달라질 수 있을까. 안타깝게도 그럴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무엇보다 내년은 총선을 앞둔 해다. 여야 간 사활을 건 정쟁이 격화될 게 뻔하다. 결국 유권자의 태도가 정치권 변화를 추동할 수밖에 없다. 새해엔 협치와 타협에 누가 더 적극적으로 나서는지 특히 주목하면 좋겠다. 그런 쪽을 지지할 것이란 여론이 형성되면 정치권의 일하는 문화도 달라질 것이다.
낮엔 시간을 허비하다가 밤에 일하는 건 일종의 구태다. 국가적 재난이 닥쳤다면 또 모를까. 한 나라의 국회의원들이 걸핏하면 밤 12시가 지나도록 일하는 건 정상이 아니다. 양당이 그토록 중시하는 젊은 유권자들은 일할 때 제대로 안 하고, 야근하는 걸 무능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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