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기업의 재고관리 방식이 바뀌었다. 종전에는 ‘최적 재고 유지(just-in-time)’가 목표였다. 비용 최소화와 효율성 극대화를 지향했다. 지금은 ‘충분 재고 유지(just-in-case)’가 지상과제다. 유사시를 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세계적으로 주요 원자재 공급 차질 등이 불쑥불쑥 터져 나온다. 셋째, 국제무역 룰도 바뀌었다. ‘마음 맞는 국가(like-minded countries)’ 간 교역이 우선시된다. 미·중 갈등 심화,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새로운 현상이다. 비용이 아무리 싸도 우리 편이 아니면 구매 사절이다. ‘경제·안보’ 개념이 새 규칙으로 자리매김했다. 경제가 안보, 안보가 곧 경제인 시대다. 이 모든 것은 한결같이 생산비용을 높인다. 기후변화, 탄소중립 관련 논의도 제조업 생산단가 상승으로 이어진다. 물가 오름세가 1~2년 내 끝나지 않고 상당 기간 계속될 수밖에 없음을 시사한다. 1970년대 석유파동 위기가 5~10년쯤 계속된다고 각오해야 할 판이다.
세계와 한국 경제의 체질이 바뀌는 일대 전환점이다. 통화정책 운용방식도 방향 수정이 불가피하다. 구체적으로 물가안정목표 리셋이다. 오늘날 세계 표준이 된 물가안정목표제는 뉴질랜드 중앙은행이 1990년 최초 도입했다. 한국은행은 1998년 뒤따랐다. 목표치는 정부와 한은이 2~3년마다 조정한다. 그런데 한은이 목표를 달성한 경우는 50% 정도에 그쳤다. 못 지킨 까닭은 한마디로 뒤를 보면서 앞으로 달리기 때문이다. 이전 데이터를 기반으로 미래 목표를 수정한다. 성공하기 힘든 구조다. 한은은 왜 ‘2%’ 목표를 금과옥조처럼 끼고 있을까. 하필 미국과 동일한 수준일까. 설명이 필요하다.
요즘 인플레이션 목표를 3~4%로 올리면 경제에 이득이라는 주장이 나온다. “인플레이션이 4% 정도는 돼야 금융위기가 닥쳤을 때 대응이 쉽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폴 크루그먼의 주장이다. 전 국제통화기금(IMF) 수석이코노미스트 올리비에 블랑샤르는 적정 인플레이션 수준을 3~4%로 본다. ‘2% 목표’가 절대 양보하지 못할 신성불가침은 아니다. 이 목표를 지키려다 경기가 불필요하게 곤두박질할 수 있다. 감기약은 의사 처방전을 지켜야 한다. 5일 치를 받으면 중간에 나았다고 느껴도 마지막까지 먹어야 뒤탈이 없다. 문제는 감기약에 포함된 항생제다. 3일 치면 충분한데 5일 치를 다 먹으면 몸이 망가진다. 인플레이션 목표도 마찬가지다. 3%면 적당한 것을 2%를 고집하면 경기 침체 장기화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인플레이션 목표를 올리자는 주장을 경청할 때다. 중앙은행이 가장 위에 둬야 할 목표는 ‘국민의 삶’이다. 중앙은행 독립성과 신뢰는 노력에 대한 보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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