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성과급으로 받은 돈을 과감하게 쓰는 것은 우리가 마음속에서 월급과 성과급에 각각 다른 ‘꼬리표’를 붙이기 때문이다. 월급은 아껴 써야 하는 돈, 성과급은 좀 써도 되는 돈으로 인식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돈을 출처나 용도에 따라 다르게 취급하는 것을 ‘심리적 계좌(mental accounting)’라고 한다. 행동경제학의 대가로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리처드 세일러 미국 시카고대 석좌교수가 창안한 개념이다. 세일러 교수는 기업이 예산을 인건비, 연구개발비, 마케팅비 등으로 나눠 지출하듯이 사람도 마음속에서 출처와 용도별로 돈에 칸막이를 쳐 놓는다고 분석했다.
심리적 계좌 이론은 쉽게 번 돈은 쉽게 나간다는 속설을 뒷받침한다. 길을 가다 돈을 주웠거나 옷장을 정리하다가 코트 주머니에서 5만원짜리 지폐 한 장을 발견했다고 생각해 보자. 우리는 그 돈을 마음속에서 ‘공돈’이라는 계좌에 넣고, 계획에 없던 외식을 하거나 별로 필요치도 않은 물건을 사는 데 쓸 가능성이 높다.
주식 투자에서 수익을 낸 사람은 그 돈으로 보다 위험한 투자에 나선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이런 것을 ‘하우스 머니 효과’라고 한다. 하우스 머니란 도박장(하우스)에서 번 돈을 말한다. 도박으로 딴 돈은 더 위험한 도박에 걸어도 되는 돈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물건값을 현금으로 낼 때와 신용카드로 지불할 때도 서로 다른 심리적 계좌가 작동한다. MIT 슬론경영대학원의 드라젠 프렐렉 교수와 덩컨 시메스터 교수는 미국 프로농구 경기 입장권 경매 실험을 했다. 참가자들을 두 그룹으로 나눠 한 그룹은 낙찰받으면 현금을 내도록 했고, 다른 한 그룹은 카드로 결제하게 했다. 실험 결과 카드로 결제하기로 한 그룹은 현금 그룹보다 평균 2.1배 높은 가격을 써냈다. 현금을 쓸 때보다 카드를 쓸 때 지출에 덜 민감해져 과소비할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기업들은 소비자의 심리적 계좌를 마케팅에 활용한다. 백화점에서는 100만원어치를 구입한 고객에게 10만원을 할인해주지 않고, 그 백화점에서만 쓸 수 있는 10만원짜리 상품권을 준다. 고객 마음속 ‘공돈 계좌’에 10만원을 꽂아줘 추가 구매를 유도하는 것이다.
재테크 방법으로 많이 거론되는 ‘통장 나누기’는 심리적 계좌를 역이용한 것이다. 투자 통장, 소비 통장, 비상금 통장 등으로 분리한 뒤 소비 통장의 잔액 범위에서만 돈을 쓰고, 투자 통장과 비상금 통장에 있는 돈은 건드리지 않는다면, 소비를 억제하고 자산을 늘리는 데 도움이 된다.
유승호 기자 ush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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