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노동 변호사로서 자문을 하다 보면 최고경영책임자(CEO)와 직접 만나 문제직원 대응에 관한 의견을 나눌 기회가 종종 생긴다. 주로 대규모 횡령·배임, 언론에 보도된 직장 내 괴롭힘, 공갈·협박 등 인사담당 임원 혼자서는 결정하기 어려운 심각한 비위에 연루된 문제직원에 관해 대응의 큰 방향을 정할 때다. 법률문제 자문을 주로 하는데, 조사·협상·직원 커뮤니케이션·위기극복 전략처럼 법률 외 사항에 대한 의견을 개진할 때도 있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레 CEO의 고민과 처지를 어깨 너머로 알게 되는데, 역시 읽고 듣던 대로 어려운 자리라는 소감이다. CEO에게는 적법한 인사조치 실행 외에도 사업 수행상 부작용 최소화, 기업문화 보전, 평판 유지처럼 다양하고 때로는 상충하는 고려사항이 있다. 그 결정을 누가 대신해 주지도 않고, 결정 후 실행을 자기 책임 하에 이끌어 나가야 한다. 아마 문제직원 대응 외 다른 사업상 결정도 마찬가지로 (혹은 더) 복잡하고 고단할 것이다.
돌이켜보면, CEO들은 문제직원 대응 방향을 정하는 방식에서 다 제각각 스타일이 있는 것 같다. 크게는 두루 의견을 듣고 시시각각 변하는 정보에 따라 결정을 수정해 나가는 신중형과 초기에 큰 방향을 결정하고 좌고우면 없이 실행에 집중하는 행동형이 있다. 어느 스타일도 법률 자문을 참고만 하고 따르지 않는 경우가 있는데, 그 점은 충분히 이해가 간다. 사실 그런 결정은 오롯이 CEO의 책임이자 권한이다. CEO보다 그런 결정을 더 잘 알고 내릴 수 있는 조언자는 없지 않을까.
단, 신중형이건 행동형이건 불문하고 CEO가 문제 직원에 관한 조사·징계·협상·직원 커뮤니케이션 등에 관한 권한을 행사할 때 잘 새겨야 할 사항으로, 변호사로서 조언할 말은 있다. 그것은 “완벽한 정답-종결이 아니라 합리적 결정-개선을 추구하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먼저, 완벽한 정답은 과욕이다. 여러 직원들이 재고를 횡령하고, 또 사업 추진비를 사적으로 쓰는 배임 행위를 저질렀다는 제보가 있어 조사를 시작했다고 해보자. 기업이 조사를 통해 이들 비위를 밝히는 것은 한계가 있다. 은밀히 일어난 다수 직원들의 여러 횡령과 배임을 입증하는 것은 자백이 없는 한 강제수사권이 있는 수사기관에게도 힘든 일일 것이다. 그런데 기업 인사·노무·감사 담당자는 강제수사권 없이, 보통 필사적으로 비위행위(위 사례에서는 횡령과 배임)를 감추고 축소하려는 문제 직원에게 진술을 받고 물증을 확보해야 한다. 그 일이 쉽게 될 리가 없다.
포렌직 전문가나 변호사 등의 전문적 조력을 받으면? 분명 사정이 나아지긴 한다. 그러나 한계는 여전하다. 직원들이 노트북과 핸드폰 포렌직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포렌직 전문가도 별 수 없다. 또 이들 전문가를 통한 본격 조사는 비용과 직원 사기 문제를 고려할 수 밖에 없으니 충분히 장기간 이어갈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래도 운이 좋아 어떻게든 횡령과 배임의 전모를 밝혀냈다고 해보자. 미안한 말이지만, 완전한 정답은 아직 멀었다. 예컨대, 연루된 직원들에게 형사고소, 징계, 보직변경같은 조치를 하려 한다. 완전한 정답이라면 사업 수행에 초래될 부작용을 최소화 하면서도 경고 효과와 안전성을 같이 달성하는 조치, 형평성이 있는 조치, 기존 인사 정책과 일관성이 있는 조치일 것이다. 그런데 그처럼 다양하고 상충되는 요구를 모두 충족하는 조치가 있을까? 여러 가능한 방안을 찾아보아도 그 방안은 모두 장점이 있는 만큼 결함 내지 아쉬움이 따를 것이다. 즉, 완전한 정답은 아닐 것이다.
예를 들어, 지휘 책임을 맡은 기간이 짧고 관리책임을 소홀히 한 본부장을, 리더로서의 책임을 물어 보직 변경하고 중징계 해야할까? 되레 CEO의 위법행위를 당국에 폭로하겠다고 위협하며, 조용한 사퇴를 조건으로 위로금을 요구하는 직원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관련 직원들에게 기업 손실을 보상하도록 하고 필요하다면 법적 조치까지 취해야 할까? 이런 문제는 한 면(예컨대 일벌백계에 의한 기강확립)의 장점을 취하면 다른 면들(분쟁 가능성과 사업 운영상 곤란)에서 위험 내지 손실을 감수해야 하는 상충관계가 있는 경우가 많고, 여럿의 합리적 결정이 있을 뿐 완전한 정답은 없다.
그 다음은, 개선이다. 본부장에 대해 구두 경고만 하자 사내 블라인드가 불공정에 대한 비난으로 들끓고, 성과평가와 직원 관리상 불만 표출로 번져 나간다. 위험하다는 법률 자문에도 불구하고 일벌백계 차원에서 배임액이 일정액을 넘는 직원을 모두 해고했는데, 노동위원회가 그 해고 유효성을 부정한다. 타협책으로 공갈 협박하는 직원을 명예퇴직시키고 비밀유지 약정을 했는데, 해당 직원이 퇴직 후 인터넷 언론을 통해 CEO가 친인척과 거래하면서 불공정한 혜택을 줬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본인은 내부고발을 하려다가 사실상 명예퇴직을 강요 받았다고 주장한다.
이런 일들은 모두 결정할 때 예상하지 못했거나, 예상은 했지만 다른 고려사항 때문에 감수했던 위험이 실현된 경우다. 이제 CEO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우선, 이런 결과가 꼭 CEO나 CEO를 보좌한 인사담당 임원의 ‘합리적 결정’이 잘못되었다는 의미가 아님을 인식해야 한다. 모든 사정을 다 알고, 또 앞일을 예측할 수는 없었다. 아니면 일어날 수 있었던 위험이 일어난 것일 뿐이다. 합리적 결정의 끝은 종결이 아닌 것이다.
이제 의연함과 굳센 마음으로 개선을 추구한다. 필요하다면 본부장에 대해 보직 변경을 하고, 직원들에게 과거 잘못된 관행을 인정하고 인사 공정을 위한 개선책을 마련한다. 한번 더 중앙노동위원회 재심을 구해 기업 입장을 설득해 보고, 그래도 안되면 징계를 취소하고 보다 가벼운 재징계를 한다. 뒤늦었지만 공갈 직원을 고소하고 적극 언론 대응에 나선다. 이 때도 완전한 정답은 없고 합리적 결정만 있을 뿐이다. 그렇게 대응을 하다 보면 상황은 개선되고, 언젠가 어떤 매듭을 지을 계기가 올 것이다. 그 때 과감하게 사안을 마무리한다.
합리적 결정-개선이라니, 써놓고 보니 말장난 같기도 하고 기껏해야 말은 쉽지만 실행이 어려운 조언일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런 애매하고 어려운 조언도 잘 소화할 수 있기에 CEO가 아닐까. 오늘도 문제 직원 대응에 고민하면서 분투하고 있을 이름 모를 CEO에게 마음을 담은 마지막 조언을 보낸다. No Good Days, No Bad Days.
조상욱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노동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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