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정책에 따라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된 공공부문 근로자 387명이 “공무원과 동일한 수당을 달라”며 소송을 제기했지만 법원에서 기각됐다. 법원은 공무원과 공무직 근로자는 본질적으로 다른 집단이라고 판단했다.
27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압희41부(정봉기 부장판사)는 지난 15일 공공부문 무기계약직(공무직)들이 정부를 상대로 “공무원과 수당을 동일하게 달라”며 2020년 청구한 3억4000만원 규모의 임금 소송에서 이같이 판단하고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서로 다른 기관의 공무직들이 국가를 상대로 집단으로 제기한 소송에서 나온 첫 판결이다.
원고인 공무직들은 고용노동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농촌진흥청, 광주지방·고등법원, 충북대, 충남대 등 공공부문에서 청소, 회계, 민원안내 등을 담당하는 직원들로 2017년 문재인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근로자 정규직 전환 추진계획’에 따라 계약직에서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됐다.
이들은 일반 공무원에게 주어지는 가족수당, 자녀학비보조금, 복지포인트, 명절 휴가비가 자신들에게 지급하지 않은 것은 위법이라며 소송을 냈다. 이들은 “공무원과 무기계약직은 본질적으로 동일한 집단”이라며 “수당의 차별 지급은 근로기준법 6조가 금지하는 '사회적 신분에 따른 차별적 처우'에 해당하며 헌법상 평등권에도 위배된다”고 주장했다. 또 “무기계약직 차별을 해소하겠다는 내용이 담긴 정규직 전환 추진 계획에 대한 공무직들의 신뢰를 위반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재판부는 원고들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법원은 “청소, 회계, 민원안내, 회계 업무 등은 본질적으로 공무원 업무와 동일한 가치 아니므로, 수당을 차별 지급하는 것은 불합리한 차별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무기계약직’은 차별이 금지되는 ‘사회적 신분’도 아니라고 봤다. 재판부는 “사회적 신분은 고정적이거나 선택이 불가능해야 하지만, 무기계약직은 그렇지 않다”며 “사용자가 무기계약직을 일방적으로 강요한 게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근로자들의 신뢰를 위반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정규직 전환 추진계획은 무기계약직 근로자에 대한 처우개선을 자율적 사항으로 명시하고 있다”며 “수당 등을 공무원과 동일한 수준으로 지급한다는 정부의 공적인 견해 표명으로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정부 측을 대리한 김동욱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는 “직군이나 직종은 사회적 신분이 아니며, 특히 공무원과 비공무원인 무기계약직은 본질적으로 동일한 비교집단이 아니라는 점을 확인한 판결”이라고 설명했다.
일각에서 이번 소송전이 문재인 정부의 어설픈 ‘비정규직 제로’ 정책이 빚은 결과물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문 정부는 2017년 공공부문 비정규직 근로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는 정책을 추진하고, 계약직을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했다. 정부 통계 기준으로는 무기계약직도 정규직으로 잡힌다. 하지만 정작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된 근로자들의 처우를 정규직과 동일하게 해줄지에 대한 대책은 전혀 마련되지 않은 상황이다. 일각에서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된 근로자들을 ‘중규직’이라고 표현하는 이유다.
한 노사관계 전문가는 “성과에 급급해 추진한 정책이 비싼 사회적 비용으로 돌아온 사례”라며 “화물연대 안전운임 일몰제처럼 일단 추진하되 수습을 뒤로 미루는 모습과도 비슷하다”고 지적했다.
최진석/곽용희 기자 iskr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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