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농심은 제페토에 ‘신라면 분식점’을 개설하고 ‘천하제일 라면 끓이기 대회’ 이벤트를 열었다. 이벤트 기간에 40만 명 이상이 가상세계 신라면 분식집을 찾았다. 이들이 메타버스에서 제시한 매운맛 강도와 건더기 스프의 종류 및 양 등에 맞춰 농심이 연구개발한 결과 신라면 제페토 큰사발의 맛 조합이 탄생했다.
농심이 지난 8월 내놓은 ‘라면왕김통깨’도 프로슈머들이 기획 단계부터 개입한 제품이다. 라면을 즐겨 먹는 소비자 18명과 신제품 콘셉트 기획 프로젝트를 진행한 끝에 고소함을 배로 끌어 올린 제품을 선보였다.
오뚜기도 2020년 출시한 ‘진진짜라’(진짜장+진짬뽕)를 시작으로 프로슈머 제품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같은 해 나온 ‘크림진짬뽕’은 진짬뽕에 크림을 더해 만든 ‘크뽕(크림짬뽕)’ 레시피가 SNS에서 인기를 끈 데서 착안해 제품화됐다. 삼양식품의 ‘불닭볶음면’에서 파생된 수많은 제품도 이렇게 나온 사례다. 불닭볶음면에 스트링치즈를 넣은 ‘치즈불닭볶음면’, 크림소스를 첨가해 매운맛을 중화한 ‘까르보불닭볶음면’ 등에 소비자의 아이디어가 적용됐다.
라면기업들이 연간 1억 봉 이상 팔리는 ‘농심 3총사’(신라면 짜파게티 안성탕면) 같은 메가 브랜드가 더는 나오지 않으리라고 보는 것도 이런 흐름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최근 5년간 라면업계에서 출시된 신제품 가운데 연간 판매량이 1억 봉을 넘긴 브랜드는 전무하다. 시장 사정이 이렇다면 다품종 소량 생산을 통한 ‘게릴라전’이 마케팅 비용 효율화 등에 더 유리할 것이란 게 라면회사들의 판단이다.
또 다른 메가 브랜드가 탄생하기 위해서는 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의 제품 개발 노력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인터넷 라면 동호회 '라면천국' 회장으로도 알려진 최용민 팔도 경영지원부문장은 "라면 소비자들은 신제품이 출시되면 한 두 번 시도해보다가 원래 익숙한 맛의 제품으로 돌아가는 '회귀 본능'이 특징이다. 이 현상이 깨지지 않는 불문율처럼 견고하게 형성됐다는 것이 업계가 풀어야 할 숙제"라며 "단기간에 승부를 내기 보다는 중장기적인 업계의 노력이 필요하다. 단순히 맛이나 소재, 컨셉트를 바꾸는 등 유행과 트렌드를 쫓아가기 보다는 본연의 맛과 품질을 추구한, 기초가 튼실한 상품으로 시장을 공략한다면 보다 롱런하는 제품으로 정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양지윤 기자 y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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