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12월 28일 15:00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1. 대표이사의 전단행위의 효력에 관한 대법원 입장의 변경
'대표이사의 전단행위'는 대표이사가 회사 내 다른 기관의 의사결정을 거쳐야 하는 행위에 대해 필요한 절차를 거치지 않고 자신의 의사만으로 단행하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대표이사의 전단행위의 효력과 관련해 종전의 대법원 판례(대법원 2005. 7. 28. 선고 2005다3649 판결 등)는 대표행위의 상대방이 이사회의 결의가 없었음에 대해 "과실 없이 선의"일 경우 대표행위는 유효, "악의이거나 과실 있는 선의"일 경우 무효라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최근 선고된 대법원 판례(대법원 2021. 2. 18. 선고 2015다45451 판결)는 대표행위의 상대방이 이사회의 결의가 없었음에 대해 "중과실 없이 선의"이면 유효이고, "악의이거나 중과실 있는 선의"이면 무효라는 입장을 취했다.
2. 대표이사의 권한제한
주식회사의 대표이사는 회사의 권리능력 범위 내에서 재판상 또는 재판 외의 모든 행위를 할 수 있다(상법 제389조 제3항, 제209조 제1항). 그러나 그 대표권은 법률 규정에 따라 제한될 수도 있고(이를 '법률상 제한'이라 한다), 회사의 정관, 이사회 규정 등 내부 규정 등에 따라 제한될 수도 있다(이를 '내부적 제한'이라 한다).
법률상 제한에 해당하는 대표적인 규정은 상법 제393조 제1항으로, 해당 조항은 "중요한 자산의 처분 및 양도, 대규모 재산의 차입, 지배인 선임 또는 해임과 지점의 설치·이전 또는 폐지"를 이사회 결의로 결정해야 할 사항으로 정하고 있다. 따라서 주식회사가 중요한 자산을 처분하거나 대규모 재산을 차입하는 경우 등의 업무집행을 할 경우 이사회가 직접 결의하지 않고 대표이사에게 일임할 수는 없으며, 이사회가 일반적·구체적으로 대표이사에게 위임하지 않은 업무로서 일상업무에 속하지 않은 중요한 업무의 집행은 정관이나 이사회 규정 등 내부규정에서 이사회 결의사항으로 정하였는지 여부와 상관없이 반드시 이사회의 결의가 있어야 한다.
한편 위 상법 제393조 제1항에 정해진 "중요한 자산의 처분이나 대규모 재산의 차입 등의 업무"에 해당하지 않더라도 주식회사의 정관이나 이사회 규정 등에서 대표이사가 일정한 행위를 할 때에 이사회의 결의를 거치도록 할 수 있는데, 이러한 경우를 내부적 제한으로 볼 수 있다. 관련해서 상법 제389조 제3항에서 준용하는 상법 제209조는 제1항에서 "대표이사는 회사의 영업에 관하여 재판상 또는 재판외의 모든 행위를 할 권한이 있다"고 규정하고, 제2항에서 "전항의 권한에 대한 제한은 선의의 제삼자에게 대항하지 못한다"고 규정하여 내부적 제한이 가능함을 전제하고 있다.
3. 대법원 2021. 2. 18. 선고 2015다45451 판결의 사실관계 및 요지
최근 선고된 대법원 2021. 2. 18. 선고 2015다45451 판결의 사실관계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A는 B(원고)로부터 30억원을 차입했고, C 회사(피고)의 대표이사 D는 A가 차입금을 변제하지 못할 경우 B(원고)에게 대위변제한다는 취지의 확인서를 작성해 B(원고)에게 교부했다. 그런데 당시 C 회사(피고)의 이사회 규정은 "다액의 자금도입 및 보증행위"를 이사회 부의사항으로 정하고 있었으나, D가 B(원고)에게 이 사건 확인서를 작성해 줄 당시 C 회사(피고)의 이사회 결의는 없었다. 이에 A가 차입금을 변제하지 못하자 B(원고)는 C 회사(피고)를 상대로 하여 대위변제할 책임을 물었다.
이에 대하여 대법원은 아래와 같이 판결하면서 C 회사(피고)의 이사회 결의 없이 위 확인서가 작성되었음을 제3자인 B(원고)가 알지 못한 데에 "중대한 과실이 있다고 볼 수 없다"고 하면서, C 회사(피고)는 B(원고)에 대하여 A의 채무를 대위변제할 책임을 부담한다는 취지로 판시했다.
"대표권이 제한된 경우에 대표이사는 그 범위에서만 대표권을 갖는다. 그러나 그러한 제한을 위반한 행위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회사의 권리능력을 벗어난 것이 아니라면 대표권의 제한을 알지 못하는 제3자는 그 행위를 회사의 대표행위라고 믿는 것이 당연하고 이러한 신뢰는 보호되어야 한다. 일정한 대외적 거래행위에 관하여 이사회 결의를 거치도록 대표이사의 권한을 제한한 경우에도 이사회 결의는 회사의 내부적 의사결정절차에 불과하고,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거래 상대방으로서는 회사의 대표자가 거래에 필요한 회사의 내부절차를 마쳤을 것으로 신뢰하였다고 보는 것이 경험칙에 부합한다. 따라서 회사 정관이나 이사회 규정 등에서 이사회 결의를 거치도록 대표이사의 대표권을 제한한 경우(이하 '내부적 제한'이라 한다)에도 선의의 제3자는 상법 제209조 제2항에 따라 보호된다.
거래행위의 상대방인 제3자가 상법 제209조 제2항에 따라 보호받기 위하여 선의 이외에 무과실까지 필요하지는 않지만, 중대한 과실이 있는 경우에는 제3자의 신뢰를 보호할 만한 가치가 없다고 보아 거래행위가 무효라고 해석함이 타당하다. 중과실이란 제3자가 조금만 주의를 기울였더라면 이사회 결의가 없음을 알 수 있었는데도 만연히 이사회 결의가 있었다고 믿음으로써 거래통념상 요구되는 주의의무를 현저히 위반하는 것으로, 거의 고의에 가까운 정도로 주의를 게을리하여 공평의 관점에서 제3자를 구태여 보호할 필요가 없다고 볼 수 있는 상태를 말한다.
(중략)
대표이사의 대표권을 제한하는 상법 제393조 제1항은 그 규정의 존재를 모르거나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사람에게도 일률적으로 적용된다. 법률의 부지나 법적 평가에 관한 착오를 이유로 그 적용을 피할 수는 없으므로, 이 조항에 따른 제한은 내부적 제한과 달리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주식회사의 대표이사가 이 조항에 정한 '중요한 자산의 처분 및 양도, 대규모 재산의 차입 등의 행위'에 관하여 이사회의 결의를 거치지 않고 거래행위를 한 경우에도 거래행위의 효력에 관해서는 위에서 본 내부적 제한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보아야 한다."
4. 시사점
위 대법원 판결은 법률상 제한을 위반한 경우와 대내적 제한을 위반한 경우를 구별하지 않고 같은 기준(선의, 무중과실)을 기준으로 대표이사의 전단행위의 효력을 판단한 것이다. 이는 거래 상대방인 제3자는 그 행위를 회사의 대표행위라고 믿는 것이 당연하고 이러한 신뢰는 보호되어야 하며, 그 근거가 법률인지, 내부규정인지를 불문하고 이사회 결의는 내부 절차이기 때문에 회사내부에서 발생한 위험을 거래 상대방에게 전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입장에서 판시된 것으로 이해된다.
이 대법원 판결에 대해서는 법률상 제한을 위반한 경우와 대내적 제한을 위반한 경우를 구분하여 보아야 한다는 견해 등 여러 평석이 있긴 하다. 적어도 대법원이 이 판결을 통해 주식회사의 대표이사가 이사회 결의를 거쳐야 함에도 이를 거치지 않고 행위한 경우, 대표행위의 상대방이 "과실없이 선의"이면 유효이고 "악의이거나 과실 있는 선의"이면 무효라는 종전의 판례와는 달리, 대표행위의 상대방이 "중과실 없이 선의"이면 유효이고 "악의이거나 중과실 있는 선의"이면 무효라는 새로운 법리를 선언한 것이다. 이사회 결의 등 내부 절차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그 절차 위반에 관한 위험의 부담을 거래 상대방에게 전가하기보다는 회사가 부담하도록 하여 거래안전보호를 일층 더 강화하였다는 점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된다.
*변호사. 본고는 필자의 개인적인 견해이며, 필자가 속한 법률사무소의 공식적인 입장과는 하등의 관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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