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내년 경제정책방향에서 ‘신(新)성장 4.0’을 내놨다. 성장 1.0 농업(빈곤 극복), 성장 2.0 제조업(중진국 진입), 성장 3.0 IT산업(선진국 진입) 성장 경로를 업그레이드해 성장 4.0 미래 산업을 확보한다는 것이다. 지난 60년간 기획만 갖고 먹고살아온 경제관료들의 수준이 여기까진가 보다. 독일의 ‘인더스트리(industry) 4.0’(지금은 인더스트리 5.0으로 진화), 일본의 ‘소사이어티(society) 5.0’은 철학적 고민이라도 담고 있다. 신성장 4.0은 그 정체성을 알 수 없다.
과거 산업 육성·정부 주도 방식에서 벗어나 민간 중심으로 프로젝트로 추진한다고 했지만, 프로젝트는 이미 다 정해졌다.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신성장 전략 전략회의를 주재하고, 이행 상황을 점검한다고 한다, 말만 민간 중심이지 과거 산업 육성·정부 주도 방식과 하나도 다를 게 없다.
신성장 전략에 맞춰 금융·인재·글로벌 협력 등 인프라를 정비하겠다는 대목에 이르면 정부가 시대 흐름을 제대로 읽고나 있는지 의문이다. 관이 투자 방향을 정하면 민간 금융이 따라가야 한다는 발상이 아직도 활개를 친다. 첨단 분야 인재 양성 방안을 마련한다지만, 인구도 줄고 있는데 언제까지 ‘양성’ 구호만 외칠지 답답하다. 각국이 자국 중심주의로 간다는 판국에 ‘원팀 코리아’로 글로벌 협력을 하겠다는 것도 황당하다. 과거와 똑같은 방식을 되풀이하면서 다른 결과가 나오기를 기대하는 사람이 있다면 정상이 아닐 것이다.
기재부가 말하는 신성장 프로젝트는 무엇이고, 산업통상자원부가 벌이는 산업대전환은 무엇이며,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제시하는 12대 국가전략기술은 무엇인가. 국가 대 국가 경쟁이 벌어지는 마당에 기재부, 산업부, 과기정통부 등이 안에서 부처 간 경쟁을 하고 있다면 코미디가 따로 없다.
정부가 과거 방식의 성장동력 집착은 이제 끊어냈으면 좋겠다. 대신 미래 산업을 정말 걱정한다면 위기 속에서도 소생의 희망을 키우는 담대한 인프라에 눈을 돌려야 한다. 내년에는 정부가 그렇게 해야 할 이유가 차고 넘친다.
팬데믹 기간 쏟아진 유동성과 인공지능(AI) 붐에 ‘생존의 기업가정신’이 더해지면서 세계 전역에 스타트업 열풍이 일었다. 글로벌 유니콘 기업 수가 기록을 갈아치웠다. 팬데믹은 미국 실리콘밸리 밖에서도 성공이 성공을 부르는 ‘플라이휠(flywheel)’ 선순환 구조가 가능하다는 점을 보여줬다. 문제는 새롭게 가해진 충격이다. 지정학적 충격, 에너지 충격, 거시경제적 충격이 합쳐지면서 ‘언제 끝날지 모를 위기(perma-crisis)’가 왔다. 겨울이 오면 스타트업에서 투자자 쪽으로 힘의 균형이 이동한다. 글로벌 금융의 주도권을 쥔 쪽이 세계 전 지역 스타트업의 과실을 가져갈 가능성이 높아진다. 빼앗긴 쪽은 혹독한 겨울을 맞이할 것이고, 앗아간 쪽은 봄을 기다릴 것이다.
미래 산업은 아무도 모른다. 스타트업이 야성적으로 만들어 나가고 있을 뿐이다. 자본주의는 도전과 실패라는 윤회의 선순환 속에서 혁신을 일으키면서 굴러간다. 이 메커니즘을 가장 잘 아는 나라가 미국이다, 불황이 찾아와도 스타트업이 솟아나고 미국 밖 인재와 지식까지 빨아들이는 혁신자본이 발동한다. 정부가 스타트업 인프라를 생각한다면 혁신금융의 파이는 지금보다 10배, 100배 더 커져야 한다. 실패의 자유가 보장되는 횟수만큼 인재와 도전은 배로 늘어난다.
내년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CES 2023에 각국 스타트업이 몰려든다. 미국 스타트업은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주도한다. 이스라엘 스타트업은 ‘딥 테크(deep tech)’를 과시한다. 한국 스타트업은 서비스와 딥 테크 모두 잘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한국 스타트업 생태계를 지켜내기 위해 정부가 뭘 해야 할지 현장에 가보라. 신성장 전략은 거기서 나와야 정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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