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후 미국에서 주로 활동해온 그가 3년 만에 한국 무대에 서는데, 클래식 애호가들이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 지난 27일 공연은 일찌감치 매진됐고, 예매한 이들은 빠짐없이 공연장을 찾았다.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 빈자리가 없었다. 데뷔 33년차 바이올리니스트답게 사라 장의 발걸음과 손놀림에는 여유가 넘쳤다. 그리고 우아했다.
첫 작품은 비탈리의 ‘샤콘’. 사라 장은 풍부한 음색과 날카로운 보잉(활 긋기)으로 왜 이 곡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음악’인지 알려줬다. 비브라토 폭과 보잉 속도를 섬세히 조절하는 식으로 때로는 따뜻하게, 때로는 매섭게 연주했다. 표현력만큼이나 기교도 빼어났다. 속주 구간에선 손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활을 놀렸다.
첫 곡이 안겨준 만족감이 너무 컸기 때문일까. 이어진 연주(바흐의 ‘두 대의 바이올린을 위한 협주곡’)에선 아쉬움이 남았다. 사라 장만 보면 나쁘지 않았다. 18명의 체임버 오케스트라를 뚫고 나오는 명료한 음색은 압권이었다. 하지만 급변하는 그의 템포와 표현력에 제2바이올린이 제대로 따라가지 못하면서 선율을 주고받는 구간에서 합이 어긋났다. 제2바이올린 소리가 사라 장의 바이올린에 묻힌 것도 바흐의 작곡 취지와 맞지 않았다.
이어진 비발디의 ‘사계’에서는 앙상블이 점차 안정을 찾았다. 사라 장은 ‘봄’에서 새소리와 천둥, 폭풍우 소리를 생동감 있게 표현해냈다. 온·오프 스위치를 번갈아 누른 것처럼 순식간에 소리의 강약과 표현의 완급이 바뀌는 그의 연주는 변화무쌍한 작품의 맛을 제대로 살려냈다. ‘여름’에서는 빠른 왼손 테크닉이 빛을 발했다. 애절한 선율 속에서도 악센트를 넣어야 할 음표를 하나하나 빠짐없이 짚어냈다.
위기는 ‘가을’ 연주에서 왔다. 불안했던 고음 음정이 두 개의 음을 동시에 짚는 중음 주법을 만나면서 흔들렸다. 불협화음이 콘서트홀을 메웠다. 화음 울림이 제대로 표현되지 않은 상태에서 활로 강한 힘을 가하다 보니, 짓눌리듯 거친 소리가 났다. 급기야 사라 장은 연주 중간에 급히 활 텐션을 조절하기도 했다. ‘겨울’에선 체력이 떨어진 탓인지 현으로 뿜어내는 에너지가 봄, 여름을 연주할 때에 미치지 못했다.
다시 여유를 찾은 건 앙코르곡인 바흐 ‘G선상의 아리아’에서였다. 그야말로 바이올린을 갖고 놀았다. 깐깐한 눈으로 보면 간간이 빈틈이 있었지만, 전체적인 흐름이 훼손될 정도는 아니었다. 그의 이름이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 명단에서 30년 넘게 빠지지 않은 이유를 찾을 수 있는 무대였다.
김수현 기자 ksoohyun@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