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연말 G7 국가들이 조용히 기후 클럽(the climate club)을 출범했습니다. 2022년 의장국을 맡은 독일의 올라프 숄츠 총리가 중점적으로 추진한 프로젝트입니다. 각국의 기후 정책 시행으로 발생할 수 있는 새로운 무역 갈등을 조정하기 위한 협력 기구입니다. G7 회원국인 미국과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캐나다, 일본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기후 클럽은 녹색무역 전쟁 시대가 눈앞에 현실로 다가왔음을 보여줍니다.
주요국 간 분쟁은 이미 시작됐습니다. 유럽연합(EU)은 미국의 역사적 기후 법인 인플레이션 감축 법(IRA)에 반발하고 있습니다. 미국은 EU가 도입하려는 탄소국경조정제도에 우려를 나타냅니다. 대담한 탄소감축과 탈탄소 산업 육성을 통해 기후 위기를 막아야 한다는 대의에는 뜻을 같이하지만, 자국 기업의 불이익과 경쟁력 훼손은 방관할 수 없다는 입장입니다.
지난해 미국은 IRA로 녹색 경쟁에서 앞서가던 EU를 맹추격하기 시작했습니다. 미국과 EU는 기후와 환경을 국제무역의 글로벌 스탠더드로 만들고 싶어 합니다. 여기에는 강력한 경쟁자로 부상한 중국을 견제하려는 의도가 숨어 있다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이들은 자신들의 어젠다를 국제규범으로 미는 한편 자국 산업 보호를 위한 인센티브를 고안해내고 있습니다. EU는 고탄소 수입품에 대한 관세 성격의 부담금 부과에, 미국은 자국 기반의 친환경 기술에 대한 보조금 지원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기후 정책이 산업 목표와 결합되면서 새로운 경쟁 국면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이제 기후 정책은 산업 경쟁력과 직결된 문제가 되었습니다. 미국 공화당 일부 의원이 ‘반ESG’ 목소리를 높이고 있지만, 미국 기업이 녹색 경쟁에서 밀리거나 불이익당하는 상황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 분명합니다. 기후 클럽은 주요 경제국이 기후 중심의 새로운 무역 질서를 주도하고 서로간의 과도한 보조금 경쟁을 피하려는 성격이 강합니다.
문제는 우리의 대응입니다. 일본만 해도 지난해 도쿄 주식시장을 개편해 ‘프라임 시장’을 신설했습니다. 프라임 시장 상장사들은 글로벌 수준의 ESG 요건을 갖춰야 합니다. 현재 논의되는 주요 ESG 공시 기준의 기본 틀로 채택돼 중요성이 커진 기후변화 관련 재무정보공개 협의체(TCFD) 기준을 이미 많은 일본 기업이 도입한 상태입니다. 일본 정부의 한발 앞선 정책 대응 덕분입니다.
반면 우리 정부의 정책 방향은 여전히 명확하지 않습니다. 녹색 경쟁에서 앞서갈 수 있는 전략이 눈에 띄지 않습니다. 국회에서도 ESG 전문가를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 현실입니다. 다행히 기업들은 경기 침체의 한파 속에서도 지속가능성의 길을 개척하기 위해 새롭게 신발 끈을 조이고 있습니다. 새해에도 〈한경ESG〉는 그 길에 함께하겠습니다.
장승규 기자 skj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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