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정부가 현재 연 20%로 묶인 법정 최고 금리를 인상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합니다. 법정 최고 금리는 말 그대로 대출을 해줄 때 법적으로 받을 수 있는 최고 허용치입니다. 2002년 처음 도입됐을 때 연 66%였다가 이후 7차례 조정돼 현재 연 20%입니다. 가장 마지막으로 인하된 것은 2021년 7월로, 당시 연 24%에서 연 20%로 조정됐습니다. 정부는 이 최고 금리를 법에 정해진 연 27.9% 범위 안에서 다시 인상하거나, 시장금리와 연동해 탄력적으로 움직이도록 하는 제도를 도입하는 방안을 국회와 논의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변동금리 대출을 갖고 있거나 앞으로 대출을 받으셔야 하는 분들은 안 그래도 치솟는 금리에 근심이 가득한데 최고 금리를 올린다니, 무슨 말이냐 하실 겁니다. 법정 최고 금리를 올리면 가령 지금 연 19.9%에 대출을 이용하고 있던 저신용자들은 더 높은 금리로 대출을 받아야 하는 상황에 몰리는 것 아니냐는 걱정도 나올 수 있습니다.
분명 최고 금리가 인상되면 일부 대출자들은 이자 부담이 증가하는 피해를 받게 될 겁니다. 특히 이미 법정 최고 금리에 근접한 수준으로 대출을 이용하고 있던 분들에게 손해가 집중될 우려가 높습니다.
그럼에도 최고 금리 인상을 논의하자는 이유는 뭘까요. 대출이 절실한 저신용 취약 차주일 수록 제도권 금융사에서 합법적으로 돈을 구할 수 있는 길이 좁아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초저금리 시대가 저물고 기준금리와 시장금리가 급등하는 이때 천장에 해당하는 최고 금리가 묶여 있으면 대출 원가에 해당하는 조달금리 상승을 상쇄해야 하는 금융사들은 수지가 맞지 않는 저신용자에게는 대출을 아예 내주지 않게 됩니다. 누군가는 이를 '금융사의 탐욕'이라고 손가락질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금융사도 어디선가 돈을 조달해 다시 돈을 빌려주며 그 이자 마진으로 수익을 내야 하는 기업인 만큼 망하지 않으려면 어쩔 수 없는 일일 겁니다.
이럴 땐 소득은 물론 담보로 맡길 자산도 적어 돈을 갚지 못할 위험이 높다고 판단되는 취약계층부터 대출이 끊깁니다. 고금리에 돈을 빌리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 가지 이유로 정말 '급전'이 필요할 땐 높은 금리에라도 일단 돈을 융통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시장 상황에 맞지 않는 '금리 상한선'이 그어져 있으니 대출 문이 닫힙니다. 이들이 합법적으로 돈을 빌릴 수 없게 된다면 갈 곳은 연간 환산 금리가 3400% 넘는 불법 대출이 판치는 사채 시장밖에 없습니다.
특히 신용점수가 300점대(옛 9·10등급)로 대부업체가 아니면 합법적으로 돈을 구하기 어려운 저신용자는 44만2336명에서 37만1504명으로 16%나 줄었습니다. 이 기간 대부업 전체 신용대출 잔액도 8조4578억원에서 8조373억원으로 5% 감소했습니다.
대부업체들은 최고금리가 연 24%에서 연 20%로 인하된 데 이어 작년 조달 금리까지 급등하면서 수익성이 없는 저신용자 대출을 줄일 수밖에 없다고 주장합니다. 최철 숙명여대 교수가 추산한 바에 따르면 기준금리와 물가상승률이 각각 3%, 5%일 때 대부금융시장의 적정 대출 금리는 최저 연 26.7%, 최고 연 37.7%였습니다. 대출 금리가 아무리 낮아도 연 26.7%는 돼야 대부업체가 자금 조달 비용, 부실 가능성 등을 고려해 저신용자에게 돈을 빌려줄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현재 한국은행 기준금리는 3.25%로 이보다 더 높죠.
못해도 연 26.7%는 받아야 하는데 연 20% 이상 받는 게 금지돼 있으니 아예 대출을 안하겠다는 게 현재 대부업 시장의 현실입니다. 실제 업계 1위 러시앤캐시는 지난달 26일부터 신규 대출을 아예 중단했습니다. 규모가 더 작은 다른 대부업체들도 기존 대출 대환이 아니면 신규 대출을 거의 하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카드사 저축은행 캐피털 등 중저신용자에게 주로 대출을 해주는 2금융권도 사정은 다르지 않습니다. 2금융권 회사 약 40%는 작년 10~11월부터 카카오페이 토스 핀다 같은 대출 비교 플랫폼을 통한 대출을 한시 중단했습니다. 저축은행 업계 1위 SBI저축은행의 모바일 뱅킹 사이다뱅크와 캐피털 업계 1위 현대캐피탈, 지방금융지주 계열 BNK·DGB캐피탈 등 대형사들도 예외가 아닙니다.
한 저축은행 관계자는 그 이유에 대해 “조달 비용이 올랐는데 대출 금리는 법정 최고금리에 막혀 올리지 못하니 대출을 극도로 보수적으로 운영할 수밖에 없다”며 “수익성을 떠나 생존을 위한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저축은행이 저신용자 대출을 줄였다는 사실은 취급 금리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저축은행 가계대출 평균 금리(신규취급액)는 2021년 말 연 13.73%에서 2022년 11월 13.84%로 거의 오르지 않았습니다. 이 기간 은행 가계대출 금리는 연 3.66%에서 5.57%로 50% 넘게 오른 것과 대조적입니다. 이는 저축은행들이 착해서 수익을 포기하고 대출 금리를 올리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더 높은 금리를 받아야 하는 저신용자에게는 대출 취급을 포기했기 때문입니다.
"이들부터 대출시장에서 밀려난다"
김미루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금리 인상기에 취약계층을 포용하기 위한 법정최고금리 운용방안'이란 제목의 보고서에서 "시장금리에 따라 금융기관의 조달금리는 변동하는 반면 법정최고금리는 20%로 고정되어 있다 보니 조달금리가 상승하면 법정최고금리-조달금리 스프레드가 감소하고, 그 결과 법정최고금리와 근접한 수준의 금리를 적용받던 가계들이 대출시장에서 배제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는 특히 "법정최고금리에 근접한 수준의 금리로 차입하고 있는 가구는 주로 소득 수준이 낮거나 신용등급이 낮은 취약가구"라며 "조달금리가 인상되면 이들이 대부업이나 비제도권 금융시장으로 밀려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습니다. 김 연구위원에 따르면 작년 6월 말 기준 연 18~20% 고금리 신용대출 이용 가구의 84.8%가 저소득·저신용자가구였고, 48.6%가 다중채무자였습니다.
김 연구위원은 최고 금리가 제한된 상태에서 2021년 말~2022년 6월 말 동안 조달금리가 2%포인트 오름에 따라 2021년 말에는 2금융권 신용대출을 받을 수 있었던 차주 약 69만2000명이 대출을 받을 수 없게 됐다고 추산했습니다. 대출 규모로 따지면 약 6조3000억원 규모입니다. 또 이들이 보유한 모든 대출은 35조3000억원으로, 만약 이들이 신규 대출에 실패해 현금흐름이 막히면 그만큼의 연체가 모든 금융권에서 발생할 수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금융사가 협상력이 없는 소비자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하게 금리를 책정 당하고, 특히 저소득층이 지나치게 높은 금리를 지불하는 일이 없도록 보호하기 위해 도입된 최고 금리 제도가 오히려 취약 계층의 제도권 금융 이용을 어렵게 하는 장애물도 된 것입니다.
김 연구위원은 "조달금리 상승폭만큼 법정 최고금리가 인상되면 가격 경직성이 해소될 것"이라며 "고정형 법정 최고금리 하에서 대출시장에서 배제된 취약차주의 대부분에게 대출 공급이 가능하다"고 예상했습니다.
김 연구위원에 따르면 2021년 말을 기준으로 조달금리가 2%포인트 올랐을 때 만약 연동형 법정 최고금리 제도가 시행 중이었다면 고정형 최고 금리 제도 하에선 대출을 받지 못했던 69만2000명 중 대부분인 68만2000명이 대출을 받을 수 있었을 것으로 추산됐습니다. 대출 기회를 얻은 소비자의 후생 증가액은 1인당 월 30만9000원이었습니다.
물론 일부 차주는 연동형 최고금리가 도입되면 대출 금리가 올라 손해를 보게 되지만, 이들의 추가 이자 부담은 월 1만원 수준이었습니다. 전체 소비자 후생 증가가 더 크다는 뜻입니다.
"'착한 금리'가 저신용자 내쫓아"
최철 숙명여대 교수는 "최고 금리 인하의 취지는 '포용적 금융'이지만 결과적으로는 저신용자의 금융시장 이용 기회를 줄이는 모순이 발생하고 있다"고 꼬집었습니다. 조성목 서민금융연구원장은 "최고금리로 대출을 받는 서민에게 중요한 것은 금리 인하가 아니라 '대출을 받을 수 있는지 없는지' 여부"라며 "저신용자들이 불법 사채시장에 가지 않도록 법정 최고금리를 올려서라도 저신용자들을 포용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빈난새 기자 binther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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