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1일 오전(현지시간) 바티칸 성베드로 광장에 조종(弔鐘)이 울려 퍼졌다. ‘명예교황’ 베네딕토 16세가 향년 95세로 선종했음을 알리는 종소리였다. 연말연시 각자의 소망을 위해 바티칸을 찾은 가톨릭 신자들은 걸음을 멈추고 탄식을 내뱉었다.
이날 마테오 브루니 교황청 대변인은 “애통한 심정으로, 베네딕토 16세 전임교황이 오전 9시34분 바티칸에서 선종했음을 알린다”고 발표했다. 이어 “신자들과 작별인사를 할 수 있도록 고인의 시신은 2일 성베드로 대성당에 안치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같은 날 교황청 공보실은 베네딕토 16세의 유언을 공개했다. 그는 신자들을 향해 “믿음 안에 굳건히 서라”며 “자신을 혼란에 빠뜨리지 말라”고 했다. 이어 “내가 잘못한 모든 사람에게 온 마음을 다해 용서를 구한다”며 “나의 모든 죄와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 나를 영생의 거처로 받아주실 수 있도록 나를 위해 기도해달라”고 했다. 공개된 영적 유언은 두 페이지 분량으로 2006년 8월 29일 독일어로 작성됐다.
베네딕토 16세가 ‘명예교황’이라 불리는 건 그가 평생 직인 교황 자리에서 스스로 물러났기 때문이다. 2005년 제265대 교황에 취임한 베네딕토 16세는 2013년 건강상의 이유로 교황직을 사임했다. 교황의 자진 사임은 약 600년 만에 일어난 초유의 사태였다. 이 이야기는 영화 ‘두 교황’으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베네딕토 16세는 사임 이후 바티칸 내 ‘교회의 어머니(Mater Ecclesiae)’ 수도원에서 지내왔다.
그가 평소 ‘정통 교리의 수호자’로 보수적 신학관을 펼쳐왔기에 당시 신자들의 충격은 더욱 컸다. 베네딕토 16세는 1927년 독일 바이에른주(州)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요제프 라칭거. 친형과 함께 신학교에 입학해 사제 서품을 받았다. 뮌헨 대주교, 추기경, 교황청 신앙교리성 장관 등을 거치며 보수 이론가로 이름을 알렸다. 개신교와의 합동미사, 사제의 결혼이나 여성 사제 서품, 임신 중절·피임·동성애·혼전 성관계·인간복제 등에 반대 입장을 고수했다.
공과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교회의 전통과 교리를 수호했다는 긍정적 평가와 함께 가톨릭의 현대화를 막고 교황청의 개혁을 외면했다는 비판도 받았다. 히틀러 소년단(유겐트) 가입 전력, 사제들의 아동 성추행 범죄 등 논란이 임기 내내 따라다니기도 했다.
가톨릭 신자인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추모사를 통해 “믿음과 원칙에 따라 일평생 헌신한 저명한 신학자로 기억될 것”이라고 했다.
출신지 독일에선 추모 물결이 이어지고 있다. 독일의 베네딕토 16세 생가와 그가 세례받은 성당 밖에는 바티칸 리본 위에 검은 리본을 단 조기(弔旗)가 걸렸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독일인 교황으로서 베네딕토 16세는 독일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을 위한 특별한 교회 지도자였다”며 “가톨릭교회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 논쟁을 좋아하는 성격을 지닌 인물, 총명한 신학자를 떠나보냈다”고 했다.
베네딕토 16세의 장례식은 5일 바티칸 성베드로 광장에서 오전 9시30분에 열린다. 장례식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집전한다. 현 교황이 전임 교황의 장례 미사를 직접 주례하는 일은 전례가 없다. 장례식에는 이용훈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의장 등 한국 천주교회 대표단이 참석할 예정이다. 국내 분향소는 주한 교황대사관, 서울 명동대성당을 비롯해 교구별로 설치된다.
구은서/박주연 기자 k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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