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현지시간) 영국의 이코노미스트지는 퓨 리서치 센터의 설문조사를 인용해 서구 사회의 정치 흐름이 좌경화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동시에 지난해 6월 독일에서 개최된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대표적인 단상이라고 짚었다.
2010년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 재임 시절에는 니콜라 사르코지(프랑스), 스티븐 하퍼(캐나다), 데이비드 캐머런(영국) 등 중도 우파 성향의 정상이 G7 회의에 참석했던 것과 달리 지난해에는 이탈리아(조르자 멜로니)를 제외하면 대부분 '큰 정부’를 지향하는 정상들이어서다.
퓨 리서치 센터의 설문조사 결과 여론이 좌경화된 모습이 나타났다. 지난해 미국에선 “은행이 경제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명제에 긍정적인 대답을 한 응답자 비율은 40%를 기록했다. 2019년 49%에서 큰 폭으로 떨어진 것이다.
IT업체와 대기업을 바라보는 시선도 냉랭해졌다. 2019년 대기업이 경제에 도움이 된다는 응답률은 30%대 후반에 육박했지만, 지난해에는 25%로 떨어졌다. IT업체도 50% 후반에서 약 6~7%포인트가량 줄었다. 반(反)기업 정서가 강해졌다는 설명이다.
반기업 정서는 경제 개혁에 대한 열망으로 이어졌다. 퓨 리서치 센터가 경제 변화의 필요성을 묻는 말에 프랑스, 독일, 영국, 미국 등에서 절반 이상의 응답자가 "경제 구조의 전면적인 개편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또 대부분의 응답자는 자신의 정치 성향을 좌파로 규정했다.
이코노미스트는 미국의 싱크탱크 경제정책연구소(CEPR)의 마노즈 프라단 연구원과 찰스 굿하트 경제학자의 공동연구를 인용해 경제 구조가 변하며 정치 토양이 달라졌다고 진단했다. 과거와 달리 생산연령인구 비중은 줄고 금리는 오르며 기업이 지니는 사회적 권위가 무너졌다는 분석이다.
과거와는 다른 모습이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생산연령인구 비중이 급증하며 세계적인 경제 번영이 이뤄졌다. 노동자들이 세금을 통해 어린이와 노령층 등 복지 정책의 수혜자를 먹여 살리는 ‘인구통계학적 배당’이 가능했다는 설명이다. 이같은 체제가 유지되기 위해 기업 성장을 우선하는 정책들이 쏟아졌다. 하지만 노령화와 인구 감소로 인해 복지가 성장을 제쳤다.
정치 토양이 좌파로 기울어진 건 지난해 가뭄, 폭설 등 이상 기후가 나타났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퓨 리서치가 지난해 선진국 19개국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선 기후 위기(75%)가 가장 큰 위험 요인으로 꼽혔다. 환경문제에 적극적인 해결책을 내려면 우파 정권이 내놓는 단기 프로젝트 이상으로 진보적인 대안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변혁의 속도는 더딜 전망이다. 정치 성향이 양극화됐기 때문이다. 영국의 마거릿 대처, 미국의 로널드 레이건 등 1980년대 보수주의를 상징하는 정상이 대권을 차지했을 때는 10%포인트 이상 압도적인 표 차가 나왔다.
하지만 미국의 바이든, 프랑스의 마크롱 등이 승리할 때는 이보다 적은 표 차로 대통령에 당선됐다. 정치 성향이 50대 50으로 첨예하게 갈린 탓에 수권 정당으로서 통치권을 행사하기 어려워졌다는 해석이다. 정치에 관한 관심도 떨어졌다. 영국에선 집권당의 지지율은 1950년대 48%를 돌파했지만 2010년대에는 40% 미만으로 곤두박질쳤다.
국민 전체를 아우르는 대중 정당이란 색채가 옅어졌기 때문이다. 1960년대 유럽 주요 정당의 평균 당원 수는 최소 100만명을 웃돌았다. 의원내각제를 채택하고 있는 영국의 경우 현재 6개 정당의 당원 수를 다 합쳐도 약 85만명에 불과하다. 유권자들이 자신의 정치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정당 정치를 신뢰하고 있지 않다는 주장이 나온다.
로버트 탈리스 밴더빌트대 교수는 "더 이상 정당은 광범위한 기반을 지닌 사회운동 수단으로 여겨지지 않고 하나의 이익집단으로 평가받는다"며 "이 때문에 정치는 하나의 '라이프스타일'이 됐다"고 설명했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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