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금융시장이 인식하는 문제는 중앙은행들의 이러한 태도가 추가적 불확실성을 야기한다는 점이다. 우선, 코로나 위기가 아직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물가를 전망하기도 어렵고, 그만큼 금리를 선제적으로 조정하기가 쉽지 않다. 둘째, 2000년대 이후 정책금리 변동 효과가 어느 정도인지, 특히 금리를 얼마나 올려야 물가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지에 대해 간명하게 답하기 어려운 환경이 됐다. 공급 요인들이 물가 상승을 주도하는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 이런데도 물가목표 달성을 확신할 때까지 금리를 올린다고 한다면 경기와 물가 상황에 비해 금리를 너무 높게 올리는 오류를 범할 가능성이 더 높아질 수밖에 없다.
Fed의 경우 한국, 일본, 유럽연합(EU)의 중앙은행처럼 물가 안정을 최고 목표로 하고 물가목표를 수치로 정해 공표하는 제도를 공식적으로 도입한 것이 아니다. 내부적 운영 기준으로 물가상승률을 장기적으로 2%에 가깝게 유지한다는 원칙을 제시할 뿐이다. 2020년의 평균물가목표(AIT) 등 발표한 정책들을 변경한 전력이 있는 파월 의장이 이번에도 물가목표를 상향 조정해 긴축 기조를 완화할 가능성이 있다.
통화정책을 비롯한 거시경제정책 운용 기준으로서 물가목표와 비슷한 것이 잠재성장률이다. 법령에 따라 공식적으로 정해 공표하는 수치는 아니지만, 이의 변화를 감안하지 않은 정책은 경제의 안정성을 해칠 위험을 키우게 된다. 예를 들어 잠재성장률이 낮아진 상황을 감안하지 않고 실제 성장률이 낮아진 것을 경기 순환상의 침체로 받아들여 확장적인 정책을 쓸 경우 경기 과열을 부를 위험이 높다.
잠재성장률보다 훨씬 명확하게 제시되는 물가목표는 이러한 위험이 더 크다. 과거의 물가 등 경제 환경하에서 최적이라고 설정된 낮은 수준의 물가목표를 고물가 시대에도 유지할 경우 금리를 너무 높이 올려 경기 안정성을 저해할 수 있다는 점을 예로 들 수 있다. 따라서 코로나 위기나 지정학적 위험 등 경제외적 요인으로 미래 물가에 대한 불확실성이 높은 경우 물가목표를 유연하게 해석하는 것이 오히려 바람직하다. 금리 전망이 인상 쪽으로만 형성되면서 과도한 시장 경색이 나타나는 부작용은 피해야 한다.
이러한 점에서 금리 인상을 잠시 멈추고 작년의 급격한 금리 인상이 기대했던 효과를 내고 있는지 분석하는 시간이 각국 중앙은행에 필요하다. 이와 더불어 기존의 물가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전력을 다하는 것보다 국민들이 동의하는 수준으로 물가목표를 유연하게 조정해 나가는 것이 중앙은행에 대한 신뢰를 더 높일 수 있다.
한국의 경우 물가안정목표제도와 한국은행의 통화정책에 대한 신뢰가 높은 편이다. 금융시장에서의 기대인플레이션이 물가목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1998년에 물가안정목표제도를 도입하면서 9% 내외의 물가목표를 설정했다가 그 이후 3%, 2% 내외로 내리는 등 제도와 목표를 경제 상황에 맞게 조정해 온 것이 신뢰를 유지한 비결이었다.
한은의 물가안정목표제도가 올해 25주년을 맞았다. 만성적 인플레이션을 겪었던 나라에서 주로 도입한 제도가 한은의 위상을 높이는 단단한 바탕이 됐다. 이러한 제도가 작년부터 큰 시험을 치르고 있다. 장기적으로도 물가 여건이 달라지고 있다. 탈세계화가 대표적인데, 지난 20여 년간 제조업 중심의 세계화가 제공했던 저물가 환경은 앞으로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한은의 물가목표가 법적인 지위를 가지는 만큼 해석의 유연성도 제약적임을 감안해 지금부터 물가목표 상향 조정에 대한 논의를 시작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앞으로의 25년에도 한은이 더 큰 신뢰를 받기를 바란다.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