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문을 두드린 서울·인천 세입자 수가 급증하면서 전국 임차권등기명령 신청(1만6309건)은 전년보다 36.6% 늘어났다. 서울 다음으로 많았던 경기도는 3749건으로 전년보다 27.3% 증가했다. 부산(739건) 경남(690건) 대구(434건) 등 그 밖의 주요 지역에서도 증가세를 보였다. 임차권등기명령은 법원이 세입자가 보증금을 돌려받을 권리를 보장하는 조치다. 임대차 계약이 끝나는 시점에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세입자가 신청해야 명령이 이뤄진다.
임차권등기명령 신청이 급증한 것은 1년 내내 이어진 금리 상승으로 대출받아 전세 보증금을 마련하는 것을 포기하고 월세로 갈아타는 세입자가 늘고 있어서다. 현재 주요 은행의 전세자금대출 금리는 연 4.4~8.5% 수준으로 연 2~3%대였던 2년 전보다 크게 높아졌다. 전세 수요가 줄어들면서 집주인은 새 세입자를 구하는 데 애를 먹고 있다. 이 때문에 다음 세입자로부터 보증금을 받아야 현재 세입자에게 보증금 반환이 가능한 집주인이 뾰족한 수를 찾지 못한 채 계약 만료 시기를 맞는 일이 잇따르고 있다. 특히 ‘갭투자(세를 끼고 집을 매입)’인 경우 보증금 반환에 더 어려움을 겪고 있다.
임차권 등기조차 못 해 발을 동동 구르는 세입자도 적지 않다. 수도권에서 1139가구의 빌라·오피스텔을 임대하던 김모씨가 갑자기 사망한 이른바 ‘빌라왕 사태’의 피해자들이 대표적이다. 보통 집주인이 사망하면 상속인을 상대로 임차권 등기를 할 수 있지만, 김씨의 경우 생전에 종합부동산세 62억원을 체납하면서 부모 등이 상속을 거부하고 있다. 김씨 사망 후 비슷한 사건이 몇 건 더 발생하면서 세입자들의 긴장감이 한층 높아졌다.
보증금 반환 문제가 심각해지자 정부도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나섰다. 정부는 지난달 말 법무부, 국토교통부, 경찰청, 주택도시보증공사(HUG), 대한법률구조공단 등으로 이뤄진 ‘전세사기 피해 임차인 법률지원 합동 태스크포스(TF)’를 꾸리고 빌라왕 사태처럼 복잡하게 꼬인 상황으로 인해 보증금을 돌려받기 어려운 임차인을 돕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국토부도 비슷한 시기 경찰청에 전세사기로 의심되는 사례 106건을 수사해달라고 요청했다.
김진성 기자 jskim1028@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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