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시장 구도엔 ‘메모리 만년 3위’ 마이크론의 설움이 녹아 있다. 운전자의 생명과 직결되는 차량용 반도체엔 극한의 안정성 테스트가 요구된다. 테스트를 통과해도 ‘단가 깎기의 달인’인 완성차업체 구매팀이 기다리고 있다. 그래서 차량용 D램은 이익이 박하기로 유명하다. PC·스마트폰용 D램 시장을 꽉 잡고 있는 삼성전자가 그동안 큰 관심을 두지 않은 이유다. 이런 틈새를 마이크론이 파고들었고 결국 1위 자리를 꿰찼다.
다른 차량용 반도체 시장도 비슷하다. 차 한 대당 200~300개가 들어가는 반도체의 대다수는 MCU라고 불리는 저가 칩이다. 단순한 제어 역할을 주로 하기 때문에 가격도 1달러 안팎으로 저렴하다. 르네사스, 인피니온, NXP, ST마이크로 같은 전문업체가 시장을 나눠 갖고 있다.
최근 ‘저부가가치’라는 인식이 강했던 차량용 반도체 시장의 성격이 변하고 있다. 테슬라의 부상과 궤를 함께한다. 테슬라의 자율주행 전기차엔 2000개 정도의 반도체가 필요하다. 차가 전자제품처럼 변하면서 자율주행, 인포테인먼트, 카메라 등 모든 부문에 고성능 반도체가 들어간다. 현대자동차그룹도 반도체 역량을 확보하는 데 팔을 걷어붙이고 있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의 발언에서 분위기 변화가 감지된다. 그는 지난 3일 열린 신년회에서 “자율주행차 시대엔 차 회사가 전자회사보다 더 치밀해지고 꼼꼼해져야 한다”고 임직원에게 주문했다.
테슬라는 자율주행용 칩을 직접 설계한다. 일론 머스크는 그동안 칩 생산을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업체에 맡겨왔다. 현재 모든 테슬라의 자율주행 칩이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의 최첨단 공정에서 생산된다. 현대차그룹도 머지않아 직접 설계한 자율주행 칩을 파운드리업체에 맡겨야 할 상황이다. 기왕이면 ‘현대차가 설계하고 삼성전자가 제조한’ 칩이 아이오닉 전기차에 들어가면 어떨까. 한국 첨단산업의 양대 축을 이끄는 기업들이 마침내 차량용 반도체에서 조우하는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
황정수 산업부 기자 hj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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