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G 장인' 캐머런의 해양 황홀경

입력 2023-01-05 16:45   수정 2023-01-06 02:35


아바타는 아바타였다. 세계 흥행 1위 기록을 가진 영화 아바타의 힘은 13년의 세월이 지나도 그대로였다. 속편 ‘아바타: 물의 길’(아바타2)은 국내에서 관객 1000만 돌파를 앞두고 있다. 지난달 14일 개봉한 이 작품은 전편(38일 만)에 비해 빠른 속도로 1000만 영화에 등극할 전망이다.


아바타2에 대해 여러 평가가 나오고 있지만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한 가지가 있다.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시각적 한계를 또 한번 넘어섰다는 점, 그렇게 192분의 압도적 황홀경을 관객에게 선물한다는 점이다. 아바타2를 보는 사람들은 물속에 함께 들어가 상상 속에 존재하는 심해의 신비를 함께 느낀다. 영화 초반엔 무엇이 컴퓨터그래픽(CG)인지 실제인지 혼란스럽다. 하지만 그 생각은 금방 지워진다.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거친 파도 속으로 휩쓸리고 바다 생물들과 숨쉰다. 밤바다를 유유히 헤엄치고 숲속을 내달린다. 이 경이롭고 압도적인 아름다움에 반한 이들 사이에선 ‘n차 관람’ 열풍이 거세다.
물탱크 속 ‘7분15초 잠수’한 케이트 윈즐릿
아바타2는 개봉 후 국내 박스오피스에서 줄곧 1위를 차지했다. 5일 기준 누적 관객은 809만 명에 달한다. 글로벌 시장에서도 그렇다. 개봉 초반엔 느슨한 스토리 등을 이유로 흥행 부진에 시달렸지만, 크리스마스 이후 분위기가 반전되며 뒷심을 발휘하고 있다. 미국 흥행 기록 사이트 박스오피스 모조에 따르면 이 작품은 지난 4일 기준 북미 지역에서 4억5000만달러(약 5716억원), 글로벌 시장에선 14억8000만달러(약 1조8800억원)를 벌어들였다. 전편은 28억달러(약 3조6540억원)에 달하는 수익을 올렸으며, 13년간 흥행 기록 1위를 유지하고 있다.

아바타2는 판도라 행성에서 나비족이 된 인간 제이크 설리(샘 워딩턴 분)가 네이리티(조이 살다나 분)와 가족을 이루며 시작된다. 이들은 인간의 무자비한 위협에서 살아남기 위해 여정을 떠난다. 이 과정에서 배경은 열대우림에서 바다로 옮겨간다. 제임스 캐머런 감독은 거대한 바다를 3차원(3D) 영상으로 구현하기 위해 3억5000만달러(약 4500억원)의 제작비, 2000명이 넘는 인원을 투입했다.

영화 속 물 장면의 99%는 CG로 만들어냈다. 작품에 참여한 최종진 CG 슈퍼바이저는 “데이터의 양으로 따지면 전편의 20배를 사용했다”며 “빛이 물을 통과하거나 반사될 때 생기는 무늬와 사물에 맺히는 현상까지도 연구했다”고 했다.
3시간 러닝타임…멀미 안 나는 이유
CG를 주로 사용한 아바타2의 제작비가 왜 이렇게 비싸냐고 질문하는 이들을 위한 답. 아바타는 실감 나는 촬영을 위해 ‘수중 퍼포먼스 캡처’ 방식을 썼다. 캐머런은 약 340만6870L의 초대형 물탱크를 설치했다. 배우들은 잠수 훈련을 받은 뒤 물속에 들어가 연기했다. 허공에서 연기하고 물 CG를 입히던 과거의 방식과 완전히 다른 것이다. 멧케이나족의 로날 역을 연기한 케이트 윈즐릿은 7분15초에 달하는 최장 잠수 기록도 세웠다.


192분의 긴 러닝타임에도 울렁거림이나 어지러움이 생각보다 덜하다는 평가엔 CG 작업의 비밀이 숨어 있다. 영화는 정지된 사진들을 컷으로 이어 붙여 움직이는 것처럼 만드는 게 기본 원리다. 평균적으로 초당 사용되는 프레임은 24컷이 일반적이다. 2009년 나온 아바타도 초당 24프레임으로 촬영됐다. 아바타2의 일부 장면은 초당 프레임을 48컷으로 늘렸다. 더 정교한 화면 연출이 가능했고, 화살이 날아가는 장면 등 속도감이 중요한 장면들은 더 선명한 시각 효과를 낼 수 있었다는 얘기다. 당연히 제작에 소요된 시간도 두 배 이상이었다.

CG 장면의 후반 작업도 그렇다. 3D 영화의 제작 기법 중 가장 고도화된 기법을 썼다. 왼쪽 눈과 오른쪽 눈이 보는 장면이 다른데 이를 합치고 융합하는 과정에서 각각의 화면을 따로 작업했다. 이후 아티스트가 또 한번의 수정 작업을 해 관람 시 ‘구토’를 유발할 수 있는 요소들을 한땀 한땀 다듬어냈다.


아바타2를 보면 각 부족과 캐릭터의 특징이 다 다르다. 황정록 시니어 아티스트는 “나비족의 눈은 인간보다 크고, 코는 동물 같은 구조를 갖고 있는데 이 특징이 잘 드러나도록 하는 데 집중했다”고 했다. 바다에 있는 멧케이나 부족은 나비족과 비슷한 듯 다르다. 프로덕션 디자인을 맡은 딜런 콜은 “멧케이나 부족은 수영에 유리하도록 지느러미처럼 불룩하게 솟은 두꺼운 연골, 넓적한 꼬리로 설정했다”며 “부족 마을도 산호초 위에 목가적인 삶의 느낌이 풍기도록 디자인했다”고 설명했다. 설리의 분노한 표정엔 호랑이의 표정을, 설리의 입양 딸 키리의 표정은 70대 배우 시거니 위버의 젊은 시절 모습을 참고해 만들었다. 또 부족들과 인간 간의 괴리감을 줄이기 위해 배우 실사 촬영 때도 CG 기법이 적용됐다.
가장 깊은 바다에 갔던 ‘바다 덕후’ 감독
캐머런의 어린 시절과 영화 세계를 알면 아바타2가 더 재밌다. 이번 작품은 감독의 삶을 그대로 투영한 역작이어서다. 캐머런은 1954년 캐나다 온타리오주 치파와에서 태어났다. 나이아가라폭포 외곽으로, ‘어디를 가더라도 폭포의 노랫소리를 들을 수 있는’ 마을이라고 한다. 거대한 자연, 특히 물의 절경을 바라보며 자란 어린 캐머런은 심해 다큐멘터리를 찾아보며 물속 세계에 대한 동경을 키웠다. 부모를 설득해 버펄로에 있는 YMCA 수영장에서 스쿠버 수업을 듣기도 했다. 열일곱 살에는 해저 바닥에 숨겨진 외계인에 대한 단편소설 ‘어비스’를 썼다. 이 짧은 이야기가 훗날 심해를 배경으로 한 SF 영화 ‘어비스’가 됐다.


캐머런은 영화 기법의 새 장을 연 거장인 동시에 유명한 심해 탐험가다. 2012년 설계에 참여한 잠수정을 타고 단독으로 마리아나해구에서 수심 1만908m까지 잠수했다. 단독 잠수로는 당시 최고 기록이었다. 지금도 캐머런은 지구에서 가장 깊은 지점에 도달한 극소수의 인류 중 한 명으로 남아 있다. 그는 이 탐험에 사용한 1000만달러짜리 잠수정을 해양연구단체에 기증하기도 했다.

그는 영화와 바다를 결합하려는 시도를 계속해왔다. 핵잠수함을 배경으로 한 ‘심연’(1990)은 역대 최고의 언더워터 어드벤처물로 평가받는다. 이 영화의 수중 장면은 버려진 원자력발전소의 미완성 원자로에 물을 채우고 촬영했다. 물은 부피 2600만L, 깊이 12m에 달했다. 심해 촬영에서 감독은 당시 스쿠버 장비를 들고 카메라를 잡았고, 제작진과 배우들은 잠수병에 걸리기도 했다. 지상에서 쏟아지는 빛을 차단하기 위해 스태프들은 거대한 방수포와 수십억 개의 검정 플라스틱 구슬로 빛을 차단하기도 했다고. 이 작품은 1990년 아카데미영화제 시각 효과상을 받았다.

김희경/김보라/이선아 기자 hkk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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