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스포츠, 어떤 놀이가 나오고, 어떤 여가·여유 찾기가 유행해도 일부러 시간 내 걷는 행위는 인간 고유의 활동·가치로 평가받을 것이다. 직립보행 호모 에렉투스의 최고 건강 유지법도 올바른 자세로 충분히 걷는 것이라고 한다. 걷기만 잘해도 현대인 질병·질환 중 90%를 치유할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빠르면 몸에 좋고, 느릿느릿 여유 있는 소요·산책은 정신에 좋다. 산지를 찾으면 등산, 강·계곡 위주로 다니면 트레킹으로 차별화도 된다. 일상 속 걷기는 바쁜 현대인이 추구하는 여유의 표상이다. 대중교통 기반의 걷기 출퇴근은 현대의 생활테제인 친환경의 모범이다. 선(禪)을 중시하는 불교 개념을 빌려보면 앉아서 수행하는 좌선, 누운 자세의 와선, 선 채의 입선에 이어 행선이라고 할 만도 하다. 별다른 준비나 비용도 덜 들어 주변에 권하기도 좋다. 의학 전문가 평가에다 오래 생활화해온 개인 체험을 덧붙여 걷기 예찬을 하자면 끝이 없다.
걷기와 관련해 새해맞이로 두 가지 관점을 생각해본다. 말하자면 ‘2023년 생활정책’ 제안이다. 첫째, 걷기 좋은 사회 인프라를 더 적극 구축해나가면 좋겠다. 경제가 성장하면서 한국의 걷기 인프라가 나아지긴 했다. 서울에서는 한강 중랑천 안양천 홍제천 변을 위시해 남산 안산과 둘레길도 빼어나다. 제주의 올레길 이후 각 지역에도 개성 넘치는 걷기 코스가 널렸다. 대도시일수록, 선진국일수록 걷기와 뛰기, 사이클 기반 시설이 좋다. 지방자치단체들이 좋은 걷기 코스 개발에 적극 나서면서 안전시설도 잘 갖춰 가면 체감형 자치행정이 될 것이다. 지역 경쟁력이 제고되고, 시민 만족도도 따라 오를 것이다. 그래도 더 보완할 게 적지는 않다.
다른 하나는 걷기에 대한 사회적 보상이다. 재정적 위기를 맞고 있는 건강보험 체제에도 도움될 방안이니, 정부가 적극 검토하면 좋겠다. 일정 수준으로 규칙적으로 걸으면 의료 보험료를 할인해주는 것이다. ‘건강 걷기 의료보험 할인제’라고 근사한 이름을 붙여도 좋다. 예컨대 하루에 1만 보를 걸으면 의료보험료 3%, 1만3000보 이상은 5% 할인, 이런 식의 인센티브다. 통계를 보면 40대가 가장 적게 걷는다. 한국의 중추그룹이 삶의 무게에 눌려 질환을 달고 있거나 잠재적 질병을 키우고 있다는 얘기다. 50대가 제일 많이 걷지만, 그래도 하루 평균 8000보가 잘 안 된다. 축적된 통계는 없지만 한국인의 보행 수는 줄어드는 추세라고 한다. 3년 주기로 장기간 진행되고 있는 질병관리청의 국민건강영양조사에서 남녀·연령·지역·소득 등으로 세분화된 과학적 걷기 통계를 낼 때도 됐다.
요즘은 스마트폰 내재 기능에 앱이 있어 걷기 계산이 자동으로 된다. 오차도 별로 없다. 필자가 근래 하루에 평지에서는 최대 5만 보, 설악산에선 4만 보까지 걸은 것을, 1년간 걸음 수는 누계 450만 보 안팎이라는 것을 쉽게 확인하는 것도 휴대폰 덕이다. 건보공단으로 이런 자료를 넘기는 것은 클릭 몇 번으로 가능할 것이다. 물론 희망자에 한하고, 인센티브 방식이 바람직하다. 퇴직하면 의료보험료 부담부터 걱정인 5060세대에게 이런 동기 부여는 유용한 걷기 유인책이 된다.
걷기 캠페인으로 건강 증진을 유도하면 건보공단 지출 부담이 줄어들 수 있다. 적절한 걷기로 나아질 시민 개인의 활기와 만족도는 돈으로 계산할 수 없는 덤이고 성과다. 이 데이터로 건강보험공단이나 각급 지자체가 먼저 중장년층을 대상으로 단계별 ‘걷기 인증’이라도 해주면 또 어떨까.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지 않나. 걷기는 사유와 사색, 정신건강에도 좋다. 차분하게 걷는 이가 많아지면 ‘사회의 격’도 나아질 것이라면 과도한 기대일까.
2023년 새해 벽두부터 위기·고난·고충·극복·타개라는 말이 넘친다. 이럴 때면 잦아지는 구호가 ‘다시 기본으로!’다. 올해도 많이 나올 것이다. 올 한 해 걷기라는 원초적 기본기에 우리 사회 모두가 주목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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