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PS와 카메라, 센서와 인공지능(AI)으로 중무장한 무인 트랙터가 밭을 지난다. 그냥 수확만 하는 게 아니라 다음 농사를 준비하기 위해 지나간 바퀴자국 속으로 씨앗과 물 비료를 집어넣는다. 농부는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모니터로 무인 트랙터가 작업한 면적이 지도상얼마나 되는지 실시간 확인한다. 고성능 카메라로 식물의 품종은 물론 땅의 형질 분석까지 가능하다. 이른바 '눈 달린 트랙터'인 셈이다.
'농슬라'(농기계의 테슬라)라는 별명이 붙은 글로벌 1위 에그테크(농업+기술) 기업 '존 디어'가 세계 최대 IT·가전 전시회 'CES 2023' 개막 첫 기조연설에서 선보인 기술이다. 존 메이 최고경영자(CEO)는 6일(현지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 베네시안 컨벤션 홀에서 "센서와 컴퓨터 비전을 활용한 완전 자율 트랙터로 지난해 CES 때보다 더 업그레이드된 기술을 소개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올해는 인간의 운전 없이 농장에서 필요한 비료와 농약을 뿌리는 작업을 실시간으로 수행하는 자율주행 트랙터의 능력을 강조했다.
존 메이 CEO는 "과거 농업은 더 큰 기계를 사용하고 더 많은 씨앗과 영양분을 투입함으로서 성장해 왔지만 이런 접근법이 오늘날 효과가 있느냐"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농촌의 노동력이 감소함에 따라 더 적인 비용과 인력으로 식량을 생산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있다"며 "존 디어는 식량안보를 위해 제조회사에 그치지 않고 빠르게 세계를 선도하는 회사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화면에 띄운 동영상에서는 새 트랙터에 적용된 기술이 대거 소개됐다. 수확을 하는 동시에 트랙터 바퀴에서 씨앗이 나와 균일한 간격으로 모종되는 장면이 나왔다. 존 메이에 이어 등장한 줄리안 산체스 존 디어 기술 책임자는 주머니에서 작은 카메라를 꺼내 들어보이며 "매 초마다 트랙터에 달린 카메라들이 초당 18.5㎡의 땅을 스캔하고 질량을 분석한다"며 "당신의 스마트폰 카메라 크기보다도 작은 콩의 종류도 식별해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제 트랙터에서 가장 중요한 부품은 카메라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존 디어가 꿈꾸는 목표는 '머신 러닝(ML)'으로 농사짓는 세상이다. 3년 전부터 CES에 계속 출품하고 있는 자율주행 트랙터는 해를 거듭할 수록 진화하고 있다. 존 메이는 "컴퓨터의 딥 러닝과 데이터 분석 기능을 크게 강화했다"며 "임베디드(컴퓨터가 아닌 기계나 장치를 제어하는) 소프트웨어와 GPS, 카메라를 모두 통합한 트랙터가 생산 뿐 아니라 농지의 지질과 환경을 분석하고 다음 파종 때 활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존 디어는 2030년까지 트랙터, 파종기, 제초제 살포기 등에서 완전 자율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날 키노트에서도 트랙터끼리, 또 다른 기기와도 실시간 연결되는 클라우드 시스템을 강조했다. 여러 기계가 함께 농사 지으면서 쌓인 데이터로 땅의 형질을 분석할볼 수도 있다.
존 디어는 이날 CES 주관사인 소비자기술협회(CTA)의 극진한 대접을 받았다. 개막식 90분 중 50분을 존 디어의 프레젠테이션으로 채웠을 정도다. 이날 개막 기조연설 진행을 맡은 게리 샤피로 회장이 직접 존 메이 CEO를 소개했고 청중들이 크게 환호하며 맞이했다. 행사장 2000여 석은 빈틈없이 들어찼다.
존 디어가 공식 개막일 키노트 첫 발표자가 된 데는 CES 2023의 메인 주제 ‘휴먼 시큐리티’ 와 관련이 있다. 세계 3대 곡창지대로 꼽히는 우크라이나의 농업 면적 파괴로 식량 위기가 크게 부각되면서다. 샤피로 CTA 회장은 "기술이 어떻게 세계의 여러 당면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지 머리를 맞대는 자리가 될 것"이라며 "대표적으로 깨끗한 식수를 확보하는 문제가 현재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 물과 식량 같은 중요 자원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확보할지 기술에서 해답을 찾겠다는 게 CTA의 목표였고, 이에 맞는 첫 번째 기업으로 존 디어를 꼽았다는 분석이다.
라스베이거스=박종필 기자 j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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