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슬라에 2억 물렸습니다. 이제라도 정리해야 할까요?”
투자자들에게 힘겨웠던 2022년이 지나갔습니다. 국내 주식 BBIG(배터리?바이오?인터넷?게임주), 미국 주식 FAANG(페이스북?애플?아마존?넷플릭스?구글)으로 대표되는 성장주 투자자들에겐 고난의 한해였습니다. 특히 코로나19 사태 이후 ‘글로벌 대표 성장주’로 떠오른 테슬라가 70% 가까이 하락하며 주주들이 큰 타격을 입었습니다.
새해 들어서도 테슬라 주가는 100달러선을 위협하는 등 불안이 가시지 않고 있습니다. 지난 5일(현지시간) 종가 110.34달러는 2020년 8월 주가 수준입니다. 2년 넘게 투자한 주주들은 허탈할 수밖에 없습니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요. 언론이 비판하는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의 괴짜 행보 탓인가요, 개미들의 지나친 욕심 탓인가요. 아니면 금리인상기 성장주에 낀 거품이 빠지는 하락장의 자연스러운 과정일까요. 한 가지는 확실합니다. 투자의 결과에 대한 책임은 결국 본인에게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번 ‘테슬람이 간다’는 신년 기획으로 전설적인 투자 대가들이 남긴 고전을 통해 과거를 성찰하고 향후 대응 방안을 모색하려 합니다. 첫 번째로 소개할 투자 대가는 ‘성장주의 아버지’이자 워런 버핏의 스승으로 알려진 필립 피셔(1907~2004)입니다. 그는 1950년대 처음으로 성장주(growth stocks)라는 개념을 소개해 월가의 투자 흐름을 바꾼 인물입니다.
피셔는 무엇보다 기업의 질(quality)을 중시했습니다. 투자할 기업을 고를 때 최고경영자의 능력과 미래 계획, 연구개발 역량 등을 가장 중요한 요소로 평가했습니다. 현대 가치투자 이론을 정립한 벤저민 그레이엄이 기업의 재무제표 등 계량적 분석을 중시했다면, 피셔는 정성적 분석으로 최고의 기업을 찾으려 했습니다.
1. 향후 몇 년간 매출이 늘어날 잠재력을 가진 제품·서비스를 갖고 있는가?
2. 최고경영진은 매출을 추가로 늘릴 신제품과 기술을 개발하려는 결의를 갖고 있는가?
3. 연구개발 노력은 회사 규모를 감안할 때 얼마나 생산적인가?
4. 평균 수준 이상의 영업조직을 가지고 있는가?
5. 영업이익률은 충분히 거두고 있는가?
6. 영업이익률 개선을 위해 무엇을 하고 있나?
7. 돋보이는 노사 관계를 갖고 있는가?
8. 임원들 간 훌륭한 관계가 유지되고 있는가?
9. 두터운 기업 경영진을 갖고 있는가?
10. 원가 분석과 회계 관리 능력은 우수한가?
11. 동종업계서 특별한 별도 사업을 갖고 있나?
12. 이익을 보는 시각이 단기적인가, 장기적인가?
13. 향후 증자로 인해 주주의 이익이 희석될 가능성이 있나?
14. 경영진은 문제가 발생하면 ‘입을 꾹 다물어버리지’ 않는가?
15. 의문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진실한 경영진을 갖고 있는가?
피셔는 위의 15개 포인트를 상당수 충족하는 우량 기업은 향후 수십년간 주당 순이익이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 때문에 투자자는 이런 ‘제대로 된 주식’을 매수해서 장기간 보유하면 아주 괜찮은 수익을 올릴 수 있다고 봤습니다. “저평가된 가치주가 고작 50% 상승에 그치지만, 성장주는 10년마다 몇백%의 주가 상승을 기대할 수 있다”
다시 테슬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테슬라의 수장 머스크는 겉보기엔 화려한 ‘슈퍼 CEO’입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의 이민자 청년은 미국으로 건너 온 뒤 30년간 10개의 기업을 창업 혹은 인수했고 대부분 큰 성공을 거뒀습니다. 상장사인 테슬라는 한때 시가총액 1조달러(약 1270조원)를 넘겼고 머스크는 세계 최고 부자의 자리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어느새 그는 스티브 잡스 애플 창업자의 뒤를 잇는, 아니 그를 넘어설 ‘세기의 혁신가’로 부상했습니다. 기존 완성차를 포함한 전 세계 유수의 기업이 앞다퉈 테슬라와 머스크를 배우려 했습니다.
그러나 영광의 성취 뒤엔 그늘도 적지 않았습니다. 그의 독단적인 경영 스타일은 자주 구설에 올랐습니다. 부하 직원들을 가차 없이 밀어붙였고 해고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언론들은 머스크가 ‘테슬람’이라 불리는 열성 팬과 ‘예스맨’ 경영진에 둘러싸여 있다고 지적했지만, 테슬라와 스페이스X의 폭발적인 성장에 묻혔습니다. 결국 머스크의 트위터 인수 후 테슬라 주식 대량 매각과 거듭된 정치 편향 발언은 주주들에게 큰 실망을 안겼습니다.
나머지 포인트는 어떨까요. 7, 8번의 경우 평균 수준으로 보이며 외부에서 평가하기 쉽지 않습니다. 테슬라는 ‘무노조 경영’이지만, 노사분쟁이 심하다거나 파업을 벌였다는 뉴스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주식 스톡옵션 등이 직원 사기진작에 도움이 됐을 것으로 보입니다. 피셔는 “아직 노조가 없는 기업이라면 평균 이상의 노사 관계나 인사 관리를 유지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지 않다면 오래전에 노조가 결성됐을 것이다”고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9, 14, 15번엔 높은 점수를 주기 어렵습니다. 테슬라는 사실상 ‘머스크 왕국’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전문가들은 “그의 가족 및 측근들이 이사회를 장악했고, 사내 그 어떤 견제도 찾아볼 수 없다”고 비판합니다. 피셔는 “아주 탁월한 1인 기업가 혼자서 회사를 이끌어간다 해도 규모가 작으면 훌륭하게 해나갈 수 있다. 이런 기업은 몇 년 정도는 대단한 투자 기회를 제공한다. 그러나 이런 핵심적인 인물이 사라졌을 경우 회사의 파국을 막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염두에 둬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최근의 테슬라 주가 하락은 15번 문제와도 연관이 있습니다. 경영진이 주주에게 얼마나 도덕적 책임감을 갖고 기업을 이끌고 있는가. 피셔는 이에 대해 날카롭게 지적합니다. “주주에게 가장 큰 피해를 입히는 것은 내부 경영진이 스톡옵션을 발행하는 권한을 남용하는 경우가 될 것이다. 이 제도를 악용해 자신에게 엄청난 스톡옵션을 부여하고 아무것도 모르는 외부 투자자들은 이를 정당한 보상이라고 잘못 판단하게 된다”
트위터 인수자금을 위해 주식을 판 것도 이런 차원에서 볼 수 있습니다. 머스크는 테슬라 CEO 직위에 대한 보상으로 돈 대신 상당 지분의 주식을 받습니다. 그는 이 구조하에 테슬라 경영권을 유지하며 지속해서 자금을 조달할 수 있습니다. 비판론자들이 ‘테슬라 주주들은 머스크의 ATM기’라고 조롱하는 이유입니다.
그렇다면 ‘CEO 리스크’가 부각된 테슬라는 이제 팔아야 할 시기인가요. 이 기업은 피셔가 평생을 두고 찾은 ‘위대한 기업’엔 미치지 못한 걸까요. 주식을 언제 사고팔아야 하는지 타이밍의 문제는 피셔에게 큰 관심사는 아니었습니다. 대를 이어 저명한 투자가가 된 그의 아들 켄 피셔 피셔인베스트먼트 회장은 ‘쌀 때 사서 비쌀 때 파는’ 가치 투자자에 가까운 인물입니다. 피셔는 시장의 타이밍과 업종 분석에 대한 질문에 다음과 같이 답했다고 합니다.
“그 문제에 대해선 내가 지금까지 해 온 것보다 훨씬 나은 해결책을 내 아들이 제시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나는 아들의 말을 믿지 않습니다”
-> 2편에 계속
▶‘테슬람이 간다’는
2020년대 ‘모빌리티 혁명’을 이끌어갈 테슬라의 뒷이야기를 풀어갑니다. 최고의 ‘비저너리 CEO’로 평가받는 일론 머스크도 큰 탐구 대상입니다. 국내외 테슬라 유튜버 및 트위터 사용자들의 소식과 이슈에 대해 소개합니다. 아래 기자 페이지를 구독하면 매주 기사를 받아볼 수 있습니다.
백수전 기자 jerr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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