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급(현역) 나올 걸 4급(공익근무요원)으로 빼는 건 600만원이면 됩니다. 대신 1년 정도 시간을 주셔야 합니다.”
6일 경기 남부에 있는 한 행정사무소. 육군 대령 출신이라며 자신을 소개한 행정사는 <병역 대체복무면제 백서>라고 적힌 책을 꺼내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안과와 피부과, 정형외과, 신경외과 등 다양한 ‘루트’로 신체검사 급수를 낮출 합법적인 방법이 있다”며 “이제까지 수백 건의 고객 업무를 처리했지만 실패 사례는 단 네 건밖에 안 된다”고 자신했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병역 브로커로 추정되는 행정사무소는 서울·경기 지역에서만 10여 곳이 영업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주로 20대가 자주 이용하는 인스타그램과 트위터, 네이버 밴드 등 SNS를 통해 병역 기피자를 모았다.
이날 만난 브로커는 상담하러 왔다고 소개한 기자에게 “뇌전증 또는 다한증 등의 질병을 이용해 현역 복무를 피하자”고 제안했다. 현역 복무 기준인 1~3급을 받더라도 병역판정검사 이의신청을 통해 ‘부활’의 기회가 주어진다는 것이다. 이의신청은 두 번까지 가능하다. 그는 “이의신청 과정에서 병원 진단서 등 서류를 만들어주겠다”며 “또 보호자로 위장한 뒤 의뢰인과 함께 대구에 있는 중앙신체검사소까지 동행해 현장에서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지 코치해줄 것”이라고 했다. 이어 “병역판정이 공중보건의사(공보의) 등 검사관 재량이 큰 점을 이용해 신체검사 급수를 낮추도록 유도하는 게 핵심”이라며 “이마저도 안 통하면 최후의 수단으로 행정소송을 하면 된다”고 덧붙였다.
이들의 수법은 OK금융그룹 소속 배구선수 조재성의 범죄 혐의가 검찰 수사망에 걸리면서 알려졌다. 조씨는 허위로 뇌전증에 걸렸다는 진단서를 받아 사회복무요원 판정을 받았다.
전문가들은 병역 전문 행정사 업계 전체로 수사를 확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강정우 군사 전문 변호사는 “신체 급수를 낮추기 위해 상담한 의뢰인과 행정사, 군의관 등 모두 병역 기피를 목적으로 행동했기에 병역법 위반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행정사들의 병역 관련 상담 자체가 위법이라는 의견도 많다. 군사법원장 출신 김상호 변호사는 “행정사법은 상담 자문에 대한 응답 정도로 행정사의 업무 범위가 제한돼 있다”며 “허위 진단서 발급을 돕는 것 역시 문제가 된다”고 말했다.
권용훈/원종환 기자 fac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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