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비게이터처럼 모르는 길을 효율적으로 알려주는 의사가 있으면 좋지 않을까? 대표적 내비게이터 의사가 1차 진료의인 가정의학과 의사다. 영국, 캐나다에서는 1차 진료의를 거치지 않고 호흡기내과나 흉부외과 같은 자문의 진료를 받을 수 없는 의료체계다. 그래서 1차 진료의를 게이트키퍼(gatekeeper), 즉 문지기라고 부른다.
한정된 시간에 많은 환자를 보는 의료체계로 운영하는 한국에서는 ‘3시간 대기, 3분 진료’라는 말처럼 환자와의 면담시간이 매우 짧아 내비게이터 역할은 더욱 중요하다. 장기적으로 의료제도가 개선돼 외국처럼 처음 만나는 환자가 의사와 최소한 30분 이상 진료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 의료제도 개선은 먼 미래이기에 우선 짧은 면담시간에 효율적으로 의사를 내비게이터로 활용하는 요령이 필요하다.
먼저 자신이 추측하는 진단보다 불편한 증상 자체를 표현해야 한다. 예를 들면 기침, 콧물을 감기로 표현하지만 단순한 감기부터 독감, 코로나, 알레르기성 비염, 축농증, 혹은 만성 기관지염인지 감별해야 한다. 하지만 스스로 진단하고 “감기약 주세요” 하면 의사도 감별 진단하지 않고 무심히 지나친다. 따라서 짧은 시간에 효율적인 정보를 제공하려면 자신이 불편한 증상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것이 훨씬 좋다.
다음은 증상이 발생한 기간을 정리해서 표현하자. 질병을 감별 진단하는 데 증상이 발생한 기간은 매우 중요하다. 예를 들면 묽은 변을 동반한 복통도 수년이 넘었으면 과민성 대장증후군, 며칠 되지 않았으면 급성 장염, 중년 이후 새로 발생한 경우 대장 종양까지 의심해 봐야 한다. 환자가 증상이 생긴 지 “한참 됐어요”라고 표현하는 경우 다시 확인해보면 ‘5일’ 또는 ‘수년’이 지났다는 사례도 있으니, 기간을 정확히 파악하느라 짧은 진료시간을 낭비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제일 중요한 것이 자신만의 내비게이터 의사를 만드는 것이다.
의료는 전문가인 의사가 환자에게 많은 정보를 파악한 뒤 심증을 가지고 검사 결과와 함께 퍼즐 맞추기 같은 과정이다. 따라서 심증이 검사 결과보다 중요하고 환자에 대한 정보가 많을수록 유리한 서비스다. 이런 점을 무시하고 단골 없이 매번 다른 의사를 찾아가면 손해 보는 것은 환자다. 가슴 통증으로 대학병원 내 4개 과를 전전하기보다 대학병원 내 가정의학과 전문의에게 내비게이터 역할을 의뢰하는 것이 돈과 시간을 절약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새해에 당신의 내비게이터가 돼 줄 의사는 누구인가?
조정진 한림대 의과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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