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재정이 겹악재를 맞고 있다. 세계 최고 속도의 고령화로 재정 구조가 악화하는 가운데 고물가 여파로 지급액도 가파르게 늘게 됐다. 지난해 5%대 고물가가 올해 국민연금 급여액 인상으로 고스란히 이어지면서 연금 고갈 시기가 더 앞당겨질 전망이다. 국민연금 개혁이 시급해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고물가 여파로 수급액도 치솟아
정부는 국민연금법에 따라 5년마다 국민연금의 장기 재정수지를 계산하는 재정계산제도(재정 추계)를 시행하고 있다. 국민연금 재정 고갈 시기는 추계마다 앞당겨지고 있다. 2013년 추계 당시 ‘2060년 고갈’로 전망됐지만, 2018년 추계에서는 ‘2057년 고갈’로 3년이나 빨라졌다. 지난해에 이은 고물가 추세가 지속되면 고갈 시기는 더 앞당겨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미 지난해 고물가 돌입 전에도 고갈 시기가 애초 전망인 2057년에서 2~3년 더 당겨질 것이라는 예상이 지속적으로 나왔다.국민연금 재정에 영향을 미치는 물가변동률 등 거시경제 변수는 이전 추계 때보다 악화하고 있다. 국민연금 지급액은 물가에 연동돼 결정된다. 직전 추계 당시 전년도인 2017년의 물가인상률은 1.9%였다. 2016년 1.0%, 2015년 0.7%에 그치면서 연금 지급액은 소폭 증가에 머물렀다.
2021년 물가가 전년 대비 2.0%포인트 뛴 2.5%를 기록한 데 이어 지난해에는 전년의 두 배 이상인 5.1%에 달하면서 올해 연금 지급액도 치솟았다. 지출이 급증한 만큼 곧 이뤄질 5차 재정추계에서는 기금 고갈 시점이 더 빨라질 것으로 전망된다. 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연금 수급자가 600만 명을 넘어가는 상황에서 수급액 증가는 재정 안정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월급에서 떼는 국민연금 보험료율은 올해도 월소득의 9%(사업자 4.5%, 직장가입자 4.5%)로 1998년 이후 25년째 동결 상태다. 1988년 3%이던 보험료율은 1993년 6%, 1998년 9%로 오른 이후 지금까지 그대로다. 1997년 국민연금제도개선기획단이 보험료율을 12.65%까지 올리라고 권고했지만 당시 정부는 동결을 택했다. 2006년엔 정부가 보험료율을 12.9%로 인상하는 방안을 국회에 제출했지만 여야가 폐기하기도 했다. 이후 연금개혁은 지지부진하다. 합계출산율(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도 1명 미만으로 곤두박질치는 등 거시경제적 변수는 지속적으로 악화하고 있다. 국민연금 운용 수익률도 최근 부진하다. 지난해 수익률은 10월 말 기준 -5.29%로 51조원가량 손실을 본 것으로 집계됐다.
보험료 인상 불가피
저출산·고령화 심화에 고물가까지 겹치면서 연금개혁의 시급성은 커질 전망이다.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 산하 민간자문위원회는 지난 3일 ‘더 오래 내고 늦게 받는’ 개혁안을 제시했다. 기대수명이 증가함에 따라 수급 연령을 현행 만 65세(2033년 기준)에서 67세 이후 등으로 늦추고, 가입 연령도 현재 59세보다 늘려야 한다는 주장 등이 담겼다.이르면 다음달 나오는 5차 재정추계 결과에 따라 ‘더 오래 내고 늦게 받는’ 정도가 더 커질 수도 있다. 정부는 국회 연금특위 논의 결과 등을 반영해 이르면 상반기에 연금개혁안을 발표한다는 계획이다. 보험료 인상을 미룰수록 미래 세대 부담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국민연금연구원에 따르면 보험료율 인상을 2030년으로 미루면 필요한 보험료율은 2040년엔 20.93%가 된다. 100만원을 벌면 20만원을 보험료로 내야 한다는 의미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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