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판 1.6 사태'…보우소나루 전 대통령 지지자 의회 점거

입력 2023-01-09 14:42   수정 2023-02-08 00:01

8일(현지시간) 브라질에서 자이르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대통령실·의회·대법원을 점거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미국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일으킨 1·6 의회 난입 사건이 벌어진 지 2년 만에 똑같은 사건이 재연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날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대통령이 수해 피해를 본 상파울루주(州)를 방문하려 대통령 궁을 비운 새 난동이 벌어졌다. 보우소나루 지지자들은 이날 오후 2시께 수도 브라질리아의 중심부에 있는 3권(입법·행정·사법) 광장에 모였다. 이들은 곧장 행정부, 입법부, 사법부 등 3부 기관에 난입해 “룰라는 하야하라”는 대선 불복 문구를 외치며 점거를 시작했다.

당시 브라질 경찰은 최루탄을 쏘며 시위대를 진압하려 했으나 저지선이 뚫렸다. 룰라 대통령은 수도를 봉쇄하는 명령을 발효했다. 점거 사태가 벌어진 지 4시간 뒤인 오후 6시 30분 즈음 연방군에 의해 시위대가 진압된 것으로 알려졌다. 브라질 현지 언론은 이날 시위에 참여한 인원이 3000여명에 달한 것으로 추정했다.

브라질 의회가 아직 개원하기 전이고, 룰라 대통령은 자리를 비워 인명피해는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시위대는 3부 시설 곳곳에 불을 지르고 해외 고위 인사의 선물을 절도하며 기물을 파손하는 등 3부 기관을 아수라장으로 만들었다.


취임한 지 7일 만에 폭동 사태를 맞은 룰라 대통령은 이날 이들을 “광신도, 파시스트”라고 비판하며 “모든 법령을 동원해 강력하게 처벌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내 브라질리아 지역에 ‘연방 안보 개입’을 선포하며 연방군이 투입됐다. 오는 31일까지 브라질리아 지역 유지를 위해 연방군이 개입할 방침이다.

미국에서 1·6 의회 난입 사건이 벌어진 지 2년 만에 똑같은 사태가 반복됐다. 2021년 1월 6일 트럼프 지지자들은 대선 불복을 선언하며 총기를 들고 미 의회에 난입했다. 당시 트럼프 전 대통령은 부정선거를 주장하며 시위를 부추긴 혐의를 받고 있다.

브라질에서도 심각한 정치 분열이 드러났다는 지적이다. 지난해 10월 대선에서 좌파 거두인 룰라 대통령이 50.9%의 득표율로 보우소나루(49.1%)를 근소하게 앞서며 승리했다. 보우소나루는 대선 기간에 전자투표 결함을 언급하며 부정선거 의혹을 퍼트렸다. 개표 이후에도 패배를 명확하게 인정하지 않는 태도를 보이며 취임식에 불참했다.

일각에서는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이 폭동을 독려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보우소나루는 대선 기간에 전자투표 결함을 언급하며 부정선거 의혹을 퍼트렸다. 개표 이후에도 패배를 명확하게 인정하지 않는 태도를 보였다. 브라질 현지 언론은 폭도 무리에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의 조카도 포함됐고, 브라질리아 보안 책임자가 전 정권의 법무장관이었다는 점을 꼬집었다.

룰라 대통령은 이날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이 공격을 독려하는 듯한 연설을 몇 차례 한 바 있다”고 비판했다.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은 “근거 없는 비난”이라고 반박했다.

브라질의 싱크탱크인 이과라페연구소는 이번 폭동을 두고 "1964년 쿠데타 이후 브라질 민주주의에 가장 큰 위협이 됐다"며 "극우 포퓰리스트들이 반길 만한 사건"이라고 지적했다. 리우데자네이루주립대의 크리스티안 린치 정치학 교수도 "보수의 정체성이 붕괴한 사건"이라고 비평했다.

포퓰리즘이 만연하다는 비판도 나온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미국의 트럼프, 브라질의 보우소나루, 이탈리아의 조르자 멜로니 등이 '현대 포퓰리즘'을 일으킨 주범이라고 지적했다. 벤자민 모핏 호주가톨릭대 교수는 현대 포퓰리즘의 특성을 세 가지로 정리했다. 엘리트를 배척하며 이에 반대되는 ‘국민’을 분류해 선동하고, 정치인도 평범한 국민 한 명에 불과하다고 호소하며 비도덕적 태도를 유지하며, 지지자를 결집하려 위기를 의도적으로 고조시키는 행위 등이다.

현대 포퓰리즘이 발현된 계기는 2008년 금융위기라는 분석이다. 불평등이 심화하고 금융시장에 대한 불신이 쌓이게 되자 정부 불신도 짙어져 정치 지형이 극단적으로 나뉘었다는 설명이다.

이미 제도권 정치가 포퓰리즘에 휘둘린다는 비판이 나온다. 최근 미 하원에서 15차례에 걸친 선거 끝에 캐빈 매카시 공화당 원내대표가 의장으로 선출된 게 대표적이다. 공화당 내 강경파 20여명 의원에게 휘둘렸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공화당 강경파 의원들이 내세우는 정책 대다수가 극단적인 성향이 강하다는 분석이다. 멕시코 국경에 장벽을 설치하거나, 이민자를 내쫓고 중국과의 무역을 중단하자는 식이다. 포퓰리즘에 가까운 정책이란 비판도 나온다.

공화당 강경파 의원들의 요구를 수용하면서 민주당과 타협할 여지가 줄었다는 주장이다. 공화당 내 온건파의 입지는 축소됐다. 공화당 강경파 의원들은 사회보장보험 폐지를 비롯해 국가채무 불이행 선언 등 급진적인 요구를 하며 민주당과의 대화를 단절할 기세다. 뉴트 깅그리치 전 하원의장(공화당)은 “공화당은 60년 역사상 최악의 상태가 됐다”고 지적했다.

매카시 하원의장이 공화당의 미래를 망쳤다는 비난도 나온다. 당내 분열은 과거에도 벌어졌지만 극단주의자들이 당의 개혁을 주도하는 건 처음이라는 해석이다. 주객이 전도된 ‘왝 더 독(꼬리가 몸통을 흔들다)’ 현상이 빚어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존 마크 한센 시카고대 교수는 "(매카시는) 의장 선거 과정에서 공화당 극단주의자들에게 주도권을 내줬다"며 "공화당 지도부의 권위를 떨어트린 결정인 동시에 당을 극우로 끌어당기는 실책이었다"고 설명했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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