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후공정 외주기업(OSAT) 엘비세미콘(LB세미콘)은 구인회 LG그룹 창업주의 손자인 구본천 수석부회장이 이끄는 세칭 LB그룹의 주력 회사다. LB세미콘을 이끄는 김남석 대표는 국제 학회나 글로벌 반도체 업계에서 모르는 이가 거의 없다. 김 대표는 서울대에서 금속공학 학사, 석사, 박사 학위를 잇따라 취득한 뒤 1996년 삼성전자 패키징개발팀에 들어가 15년을 몸담고, 이후 SK하이닉스에서 10년 더 커리어를 쌓았을 정도로 정통 '반도체맨'이다. 김 대표는 9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후공정의 중요성이 점점 커지는 만큼 삼성전자·SK하이닉스의 성공 경험을 LB세미콘에 접목하겠다”고 말했다. 다음은 김 대표와의 일문일답.
LB세미콘에 어떻게 합류하게 됐는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서 총 25년 정도 반도체 엔지니어로 일했다. 너무 일만하고 가족을 챙기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어 회사를 나와 쉬고 있는데 LB세미콘에서 "삼성전자와 하이닉스를 모두 경험한 패키징 전문가를 찾는다"고 하더라. 지인이 나를 추천해 LB그룹의 구본천 부회장을 만났는데 후공정을 키우겠다는 의지가 대단했다. 대기업에서 쌓은 성공 경험을 LB세미콘에 이식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의 인지도는 아직 그리 높지 않은 것 같다.
LB세미콘의 대외인지도가 실적(2021년 연결기준 매출 4962억원, 영업이익 442억원)이나 유사한 사이즈를 가진 네패스, SFA, 하나마이크론에 비해 낮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다보니 고객사가 우리를 찾기 보다 우리가 찾아가야 하는 상황들이 많이 발생했다. 인지도는 회사가 성장하고 확장하는데 필수 요소다. 반도체도 마케팅이 중요한 산업이기 때문이다. 회사 이미지 제고 필요성을 느껴 브랜드마케팅 부서를 따로 신설했더니 인지도가 높아지는 걸 느낀다.
LB세미콘은 디스플레이구동칩(DDI) 후공정이 주력이었지만 이제 종합 OSAT로 도약하려는 움직임이 뚜렷하다.
우리가 가야할 방향은 명확히 '탈(脫)DDI'이고 '탈메모리'다. DDI는 전체 반도체 시장에서 비율이 5% 이하에 불과하다. 메모리 역시 이제 반도체 전체 시장에서 큰 포지션을 차지하지 않는다. 비메모리에서 점유율을 늘리고 종합 OSAT로 나아가려면 후공정 시스템 전체를 구축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고객사를 유치하는데 제한적인 상황이 발생한다. 고객사들은 턴키(turnkey·프로젝트 자체를 한 업체에 통으로 위임하는 것)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려면 국내에만 머물러선 안된다. 애플, 인텔, 퀄컴, 브로드컴 등 고객사를 발굴하려는 시선을 바깥으로 돌려야 한다. 해외 대형 고객사를 유치하려면 우리 힘만으로는 안되기 때문에 연합전선이 필요하다. 그들과 비즈니스를 해왔던 기업들과 전략적 제휴를 맺는 게 좋은 방법이다. 들으면 누구나 다 알만한 OSAT 업체와 제휴를 맺어서 관련 작업들을 하고 있다. 미국, 대만 등에 세일즈오피스도 열어 고객사 관리도 강화하고 있다.
2027년 매출 1조원 시대를 열겠다고 공언했다. 업황이 좋지 않은데 가능한 목표인가.
물론이다. 지난해 반도체 업황이 안좋았고 올해도 안좋다는 예상이 나오지만 반도체 업황은 역사적으로 3년씩 '다운턴'이 있어왔다. 이러한 시기에는 시장이 올라갈 때를 대비해 미리 준비해야 한다. 내년 중반까지 연구개발(R&D)에 매진하고 많은 고객사를 연결해 신뢰를 쌓은 다음 업황이 반등할 때 올라타면 충분히 매출 1조원 가능하다. 또 'DDI 온리'에서 벗어나 국내 반도체 대기업 관련 매출도 빠르게 늘고 있다. LB세미콘은 국내 주요 반도체 업체들이 자리잡은 평택에 위치하고 있어, 관련 수주를 확보하기에도 유리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2025년 세계 10위 OSAT 업체로 도약하겠다는 목표도 세웠다.
후공정은 결국 파운드리 싸움이다. 파운드리에서 TSMC는 얼마나 강한가.
TSMC 사람들이 보통이 아니다. 그들을 만났을 때 받은 첫인상은 "이야~고수다!" 라는거다. 일단 그들은 세계에서 가장 오랜 시간 파운드리를 한 베테랑들이다. 미국 등 반도체 선진국에서 경험을 쌓고 다시 모국(대만)에 모이다 보니 엄청난 파운드리 노하우에 네트워크까지 풍부하다. 사업에 대한 수완, 업계 신뢰 등 모든 걸 다 갖추고 있다. 이런 '파운드리 괴물'들이 TSMC에 차고 넘친다. 제가 어느 회사에 가서도 그렇게 감명을 받은 적이 없다. 한국이 대만 따라잡으려면 대기업과 정부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 민관이 하나가 되서 국내 후공정 전체를 규합하는 생태계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메모리 초격차를 이룬 경험으로 비메모리 전략을 짜면 안되는가.
메모리는 모두 하나가 되서 힘을 합쳐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면 키울 수 있다. 하지만 지금 현재 팹리스(반도체 설계 전문), 에이직(주문형 반도체) 잘하는 회사들 보면 전부 미국이나 유럽이다. 비메모리는 열심히만 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창의적인 토론과 끝없는 실패 끝에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게 포인트다. 우리나라 문화는 이게 잘 안된다. 교육 방식의 문제일 수 있다. 일본도 마찬가지다. 지시를 받아서 하는 게 아니라 자발적으로 새로운 것을 만드는데 익숙하지 않다보니 비메모리를 키우는 것은 쉽지 않다. 교육 시스템 개혁부터 시작을 해야할 것 같다.
파운드리, 후공정 키우려면 정부가 어떤 역할을 해야할까.
세액공제가 가장 중요하다. 정부가 올초 반도체 업체 세액공제 8% 해준다고 했다가 공제율 높이지 않았나. 8%로는 도움 안된다. 미국, 대만도 세액 공제를 많이 한다. 반도체가 이미 전략무기화가 돼 있는데 한국만 뒤쳐지면 누구도 국내에 투자 안한다. R&D, 일감, 시스템, 인력 수준 다 퇴보할 수밖에 없다. 세액공제 30% 이상이 적정하다. 100%를 공제하는 중국은 자충수가 될 수 있다. 장비가 필요없어도 그냥 사기 때문이다. 국가 세금이 쓸데 없는 과잉 투자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30%~50% 사이가 좋다고 생각한다.
평택=강경주 기자 quraso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