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아이켄베리 미국 프린스턴대 석좌교수는 대표적인 자유주의 국제정치학자다. 약육강식 논리보다는 자유주의 국제질서를 기반으로 국가 간 관계를 분석해왔다. 하지만 그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국제사회가 전쟁 이전의 평화로운 시기로 돌아가지 못할 것이라고 단언했다.
아이켄베리 교수는 한국경제신문과의 최근 화상 인터뷰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물러나기 전까지 국제사회가 안정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했다. 이어 “중국이라는 전체주의 국가와 민주주의 국가 진영 간 대립이 계속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언제쯤 끝날까요.
“불행히도 오래 지속될 것 같습니다. 푸틴 대통령은 스스로 승리했다고 느끼기 전에 전쟁을 끝낼 뜻이 없습니다. 반대로 우크라이나는 푸틴의 승리를 용납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크라이나 영토와 주권의 일부라도 양보하지 않을 겁니다. 우크라이나 영토를 되찾고 독립을 유지하려는 결의는 점점 더 강해지고 있어 쉽게 전쟁이 종결되기 힘들 것 같습니다.”
▷세계가 우크라이나 전쟁 전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까.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러시아는 민간인과 여러 기반 시설을 잔인하게 공격했습니다.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규칙과 글로벌 시스템에 대한 공격으로 봐야 합니다. 러시아 군대와 러시아 용병 회사인 와그너그룹이 범한 살상은 2차 세계대전 이후에 일어난 그 어떤 행동보다 잔인합니다. 서구 세계뿐 아니라 러시아의 파트너 국가인 중국에도 독이 됐다고 봅니다. 이제 푸틴 대통령이 뭔가를 하기엔 한계가 있습니다. 하지만 푸틴 대통령이 물러날 때까지 국제 질서가 안정되기는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러시아 외에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나라는 어디라고 생각합니까.
“북한입니다. 점점 더 다른 나라에 큰 해를 입힐 능력을 갖춰가고 있습니다. 게다가 북한은 우리에게 익숙한 정치 체제를 갖추고 있지 않습니다. 그들의 요구를 어떻게 들어주고 보장해줄지 계산하기도 힘듭니다. 그래서 평양발로 좋지 않은 소식이 계속 나올 것으로 예상합니다.”
▷한반도 전쟁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까.
“대만이 더 위험합니다. 대만 국민의 열망과 중국의 열망은 양립 불가능합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대만을 배신자로 간주하고 대만 통일에 자신의 명운을 걸었습니다. 그러나 대만 사람들은 대만을 독립국으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민주적 정체성이 강합니다. 대다수 대만 국민은 중국 같은 독재 정권에 편입될 수 있다는 점에 불안해하고 있습니다. 홍콩을 보고 그 정도가 더 심해졌습니다. 대만은 개방적인 시스템과 세계 경제에 더 연결되기를 원합니다. 대만의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훌륭한 외교와 인내, 침착한 접근 태도가 필요합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양안관계에 어떤 영향을 줄까요.
“일단 중국은 대만에 군사력을 사용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보다 훨씬 강력한 군사력을 보유하고도 원하는 대로 못하고 있습니다. 중국도 이런 상황을 보고 교훈을 얻었으면 합니다. 중국이 대만을 침공할 수 있겠지만, 대만 국민을 상대로 지배자 행세를 하지는 못할 겁니다. 그럼에도 중국이 위험천만하게 대만을 침공하려 한다면 감당해야 할 리스크가 크다는 점을 분명히 인식하도록 해야 합니다.”
▷중동 상황도 예사롭지 않습니다.
“시리아 난민 사태처럼 중동 상황이 유럽에도 피해를 줄 수 있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미국과 러시아 사이에서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게임을 하고 있습니다. 미국은 필연적으로 중동 지역에 집중해야 하지만 대체로 문제 해결을 피하고 있습니다. 미국이 중동에 가능한 안정적인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세계가 새로운 냉전 시대에 진입했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냉전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 점점 더 포괄적인 이데올로기 전쟁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사는 동안 계속될 것입니다. 그렇다고 ‘철의 장막’을 치고 동서 냉전을 하던 수준의 투쟁은 아닙니다. 기술과 경제 분야에서 치열한 경쟁이 있을지라도 냉전 세계의 특징은 오늘날 존재하지 않습니다. 다만 중국 공산당이 지배하는 일종의 전체주의적 국가사회주의와 민주주의 국가들 사이의 이데올로기적 전쟁은 있습니다. 두 진영은 정치, 경제, 사회를 조직하는 방법에 대해 매우 다른 철학을 갖고 있습니다. 사활이 걸린 경쟁이기는 해도 냉전으로 묘사할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가 한국 등 동맹국의 갈등을 부추긴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IPEF는 느슨한 외교 틀입니다. 전략적 목표는 심오하지만 국내 제약으로 인해 아직까지는 상당히 모호하고 완전히 구성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미국은 국내 상황 때문에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 가입하기 힘듭니다. IPEF는 이런 상황에서 취해진 첫 번째 조치입니다. 앞으로 IPEF에 많은 내용이 추가될 것입니다. 미국 정부는 동아시아 국가들이 중국이 아니라 미국으로 연결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 존 아이켄베리 석좌교수는
자유주의 이론으로 국제정치 분석한 석학
존 아이켄베리 프린스턴대 석좌교수는 자유주의적 이론을 국제정치 현실에 접목한 대표적 석학으로 꼽힌다. 조지 부시 대통령 임기 때인 1991년 미국 국무부 정책기획국에 근무했고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외교안보 자문 역할을 했다. 미국 중심의 자유주의 질서를 내세우는 조 바이든 행정부 외교 정책의 이론적 토대를 제공한 학자로 평가받는다.
그는 다양한 곳에서 연구 경험을 쌓았다. 1985년 시카고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뒤 프린스턴대에서 교수 생활을 시작했다. 이어 펜실베이니아대로 옮긴 뒤 조지타운대를 거쳐 다시 2001년 프린스턴대로 복귀해 지금까지 석좌교수로 일하고 있다.
2008년부터는 경희대 석좌교수도 겸임하며 한반도와 동아시아 문제를 연구하고 있다. 프린스턴대로 오기 전엔 카네기재단과 우드로윌슨센터, 브루킹스연구소 등 다양한 싱크탱크에서도 일했다.
아이켄베리 교수는 국제사회가 위기에 빠질수록 자유민주주의 원칙을 지켜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중국의 부상으로 국제질서의 틀이 바뀌었다고 하더라도 자유주의적 세계관이 큰 역할을 하고 있다는 신념을 유지하고 있다.
△1954년 출생
△1985년 시카고대 박사
△1991~1992년 국무부 근무
△1993년 카네기재단 연구위원
△1998년 펜실베이니아대 로더연구소장
△1999년 우드로윌슨센터 연구위원
△2001년 조지타운대 교수
워싱턴=정인설 특파원 surisur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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