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사상 최대 이익을 거둔 국내 5대 은행에서 두 달 사이에 3000명 이상이 희망퇴직으로 짐을 쌀 전망이다. 경기 침체가 본격화하면 희망퇴직 조건이 나빠질 것으로 예상해 대거 신청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조기 은퇴 후 ‘인생 2막’을 준비하는 ‘파이어족’이 늘어난 것도 이유로 꼽힌다.
9일 금융권에 따르면 국민은행이 지난달 28일부터 이달 2일까지 희망퇴직 신청을 받은 결과 730여 명이 퇴직 의사를 밝혔다. 희망퇴직이 확정된 직원은 오는 18일 은행을 떠난다. 이번 희망퇴직 신청자는 지난해 1월(674명)보다 50명 이상 많다. 희망퇴직 대상은 1967~1972년생이다. 근무 기간에 따라 23~35개월치 월평균 급여를 특별퇴직금으로 지급한다. 학기당 350만원의 학자금, 최대 3400만원의 재취업 지원금, 퇴직 1년 이후 재고용 기회 등을 준다.
신한은행은 2일부터 희망퇴직 신청을 받아 10일 접수를 마감한다. 작년에는 부지점장 이상만 신청할 수 있었는데 올해는 직급을 부지점장 아래로 낮추고 나이는 만 44세까지로 확대했다. 출생 연도에 따른 최대 36개월치 월급여를 특별퇴직금으로 준다.
지난해 말 희망퇴직 절차를 끝낸 농협은행은 퇴직금을 최대 월평균 급여의 28개월에서 39개월로 확대하자 2021년(427명)보다 66명 많은 493명이 짐을 쌌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최근 제시되는 희망퇴직 조건은 은행들이 사상 최대 실적을 거뒀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며 “경기 침체가 시작되면 은행 업황도 영향을 받으면서 희망퇴직 조건이 나빠질 수 있다”고 했다. 코로나19 확산 이후 대출 규모가 많게는 전년 대비 10% 이상씩 급증하고, 대출 금리가 ‘고공행진’을 이어가면서 은행들은 지난해까지 매년 사상 최대 이익을 거뒀다.
노동조합도 희망퇴직 확대를 요구하고 있다. 디지털 전환에 따른 점포 축소 등으로 불가피하게 은행원 수를 점진적으로 줄여야 하는 상황이지만 그보다 더 많은 직원이 노조를 통해 희망퇴직을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희망퇴직 연령을 낮춘 것도 노조의 요청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게 은행들의 설명이다.
치열해진 승진 경쟁도 희망퇴직 확대 요인으로 꼽힌다. 현실적으로 지점장(부장급)은 물론 부지점장(부부장급)도 달지 못하고 임금피크를 맞아 차장으로 퇴직해야 하는 직원들이 적지 않아서다. 차라리 50대 초반, 40대 후반에 일찍 퇴직해 ‘제2의 인생’을 준비하는 쪽을 택하는 것이다.
박상용 기자 yourpencil@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