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9일 제2경인고속도로 과천 방음터널 구간에서 일어난 화재 참사는 “인재 재발 방지”를 한목소리로 다짐한 정부와 정치권의 진정성을 확인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주행 중이던 트럭에서의 화재가 순식간에 다른 차들로 옮겨붙어 5명 사망, 41명 중경상의 대형 참사로 비화한 과정과 경위가 ‘이태원 참사’와 본질적으로 다를 게 없기 때문이다. 사상자 규모를 빼고는 방음터널 사고 쪽이 오히려 더 황당하고 비극적인 사고라고도 할 수 있다.
비슷한 사고가 재발할 가능성 측면에서도 방음터널 쪽 문제가 더 심각하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전국 55개 방음터널 안전성에 관한 전수조사를 하겠다”고 즉각 발표한 이유일 것이다. 사고가 난 과천 방음터널은 벽과 천장이 불이 잘 옮겨 붙는 플라스틱류로 돼 있어 참사를 키웠는데, 55개 터널 중 53곳에 비슷한 플라스틱 소재 방음판이 쓰였다는 게 1차 확인 결과다. 원 장관은 “불에 강한 소재로 방음판을 바꾸는 등 철저한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했는데, 근본 원인에 대한 인식을 우려하게 하는 발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가연성 소재를 불연성으로 바꾼다는 건 화재 사고만을 염두에 둔 건데, 강풍 진동 등 다른 재해로 사고가 일어나면 또 ‘소재타령’을 할 것인가.”
이태원 사고가 “안전계도 조치를 적극적으로 취했다면 예방할 수 있었다”는 이유로 치안당국에 집중포화가 쏟아지는 것에 견준다면, 방음터널 참사는 “없어도 됐을 시설로 인해 억울한 죽음을 불렀다”는 게 근본 문제라는 것이다. “꼭 필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인공 구조물이 없어야 한다”는 게 도로 건설·운영의 기본명제임을 기억한다면, 왜 이런 주장이 나오는지 짚어볼 이유가 충분하다.
요컨대 “차량들의 도로 주행 중 발생하는 소음을 낮추는 수단이 방음터널밖에 없느냐”를 문제 해결의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 유럽 일본 등에서 보편화된 저소음 도로포장 공법을 도입하면 방음터널 없이 소음 저감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지적이 오래전부터 나온 터여서다. 환경부 산하 국립환경과학원이 2013년 발표한 보고서(저소음 포장도로 평가기법 개발)도 그런 내용을 담았다.
일본은 1990년대부터 지침을 마련해 전체 도로의 30%를 저소음 포장으로 시공했고, 유럽은 그 비중이 50%에 이른다는 것이다. 한국은 이 비율이 0.3%에 불과했다. 저소음 포장은 소음뿐 아니라 도로 위에 고인 물도 투과·흡수시켜 운전자와 보행자들이 물벼락을 맞을 소지도 없애버린다. 운전자 안전을 위협하는 수막현상을 예방하는 효과까지 더해진다.
유독 한국만 이렇게 장점이 많은 저소음 도로포장 대신 방음터널에 치중하는 것은 설치비용과 사후관리 등의 문제 때문이라는 게 정부 관계자 설명이다. ‘건설산업 선진국’을 자임하는 나라에서 할 얘기가 아니다. 유럽과 일본이 진작 해결한 문제를 아직도 풀지 않고 있다는 자백일 뿐이다. 혹시라도 방음터널 사업자들의 ‘생태계’에 발목 잡힌 게 아닌지도 짚어볼 때가 됐다. 과천 방음터널 시공사 대표를 검찰이 수주 청탁 혐의로 기소하고, 지난달 1심 법원이 유죄 판결을 내린 사실이 그런 의심을 갖게 한다.
어떤 이유로든 무고한 시민들이 터무니없는 사고로 목숨을 잃는 날벼락 같은 일이 더는 없어야 한다. 정부와 정치권이 ‘이태원 참사’에 붙들려 있는 게 그런 인식에서라면 ‘방음터널 참사’에도 같은 잣대를 대는 게 마땅하다. 죽음의 억울함에서 더하면 더했지 못할 것 없는 데다 일어날 이유가 없었을 수도 있는 사고를 ‘이태원과 달리 사망자가 많지 않아서’ 적당히 넘기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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