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01월 11일 11:30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새해를 맞아 회사채 시장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연일 조단위 금액의 주문이 들어오는 등 기관투자가들이 회사채 매수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분위기다. 다만 신용등급 AA 급 이상 우량채에 대한 쏠림 현상이 심화하는 것은 부담이다. A급 이하 회사채에 대한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조언이 나온다.
◆AA 급 공모 회사채 ‘완판’ 행진…증액 발행 줄이어
투자은행 업계에 따르면 이달 들어 10일까지 기업 10곳의 공모 회사채 수요예측에서 총 17조9550억원의 주문이 들어왔다. AA 급 이상 우량채에 기관투자가들의 수요가 대거 몰렸다. KT가 2조8850억원으로 회사채 수요예측 역대 최고액을 경신한 지 하루 만에 포스코에 3조9700억원이 몰렸다.지난해 회사채 미매각으로 체면을 구긴 LG유플러스도 3조2600억원의 매수 주문이 접수됐다. 롯데제과, 이마트, 연합자산관리, 현대제철 등도 1조원이 넘는 뭉칫돈이 들어왔다.
수요예측 흥행에 성공하면서 증액 발행도 이뤄지고 있다. KT는 2년물 300억원, 3년물 800억원, 5년물 400억원 각각 증액하는 데 성공했다. 포스코도 기존 3500억원에서 7000억원까지 발행 규모를 늘렸다. 이마트와 연합자산관리는 각각 1900억원, 300억원 증액 발행을 결정했다.
기관들의 적극적인 참여에 발행 금리도 낮출 수 있게 됐다. KT의 2·3·5년물 회사채는 각각 동일 만기 회사채 시장금리(민평) 대비 0.5%포인트, 0.56%포인트, 61%포인트 낮게 형성됐다. 현대제철은 민평 대비 45~70%포인트 낮게 발행 금리가 매겨졌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회사채 시장은 크게 위축됐다. 잇따른 금리 인상과 레고랜드 사태로 기관투자가들의 투자심리가 얼어붙으면서 미매각 사태가 반복된 탓이다. 한온시스템(AA-급), 한화솔루션(AA-급) 등 우량 회사채도 미매각 사태를 벗어나지 못했다. 수요예측에서 부진한 성적을 거둬 평판이 하락할 것을 우려한 기업들은 회사채 발행 일정을 연기하기도 했다.
하지만 새해 들어 우량채에 대한 매수세가 살아난 게 회사채 완판으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금리가 조만간 고점을 찍을 것이라는 인식에 풍부한 유동성의 ‘연초효과’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통상 1월은 연초효과를 노린 기업들이 회사채 시장에 몰리는 시기다. 연말 회계장부를 마감한 기관투자가들이 공격적으로 채권을 쓸어 담기 때문이다.
회사채 투자심리를 확인할 수 있는 지표인 크레딧 스프레드(신용등급 AA- 기준 회사채 3년물 금리-국고채 3년물 금리)도 안정세를 찾고 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크레딧 스프레드는 지난 9일 136bp(1bp=0.01%포인트)로 집계됐다. 지난해 12월 초 170bp 수준보다 30bp 이상 낮아졌다. 스프레드 축소는 채권 발행을 통한 기업의 자금 조달 비용이 줄어들었다는 의미다.
이경록 신영증권 연구원은 “우량등급 회사채와 카드채, 은행 지주계열 캐피탈 채까지 온기가 확산하고 있다”며 “자금시장이 새해 들어 더욱 강한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 외화채, CP 시장도 ‘훈풍’
외화채 시장도 ‘온기’가 돌고 있다. 한국수출입은행은 지난 4일 3년 만기 10억달러, 5년 만기 15억달러, 10년 만기 10억달러 등 총 35억달러 규모 외화채를 찍었다. 정부를 제외한 국내 금융사가 해외 투자자를 대상으로 발행한 역대 외화채권 중 가장 큰 규모다.포스코는 지난 9일 3년 만기 7억달러, 5년 만기 10억달러, 10년 만기 3억달러 등 총 20억달러 규모의 외화채를 발행했다. 포스코 측은 “원화 및 외화 채권 발행에 성공함으로써 추가 금리 인상과 유동성 축소에 대비해 선제적으로 자금을 조달하고 성장 투자 재원을 확보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자금시장 안정화 추세는 단기자금 시장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CP 금리는 지난 9일 91일 물 기준으로 전날보다 0.04% 하락한 연 4.97%에 장을 마감했다. CP 금리가 4%대로 내려온 것은 지난해 11월 8일 이후 약 2개월 만이다.
다만 신용도가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비우량채 시장은 좀처럼 풀리지 않고 있다. 올해 들어 공모 회사채 시장에 도전한 기업들은 모두 AA 급 이상 우량채다. 이 때문에 신세계푸드, 하나에프앤아이, 효성화학 등 이달 회사채 발행을 추진 중인 A급 기업들의 수요예측 결과에 주목해야 한다는 게 채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A급 기업들도 기관투자가들의 투자심리를 자극하기 위해 장기물 대신 단기물을 활용하고 산업은행의 지원을 받는 등 ‘총력전’에 돌입했다.
A급 이하 기업들을 위한 정책적 지원 등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김은기 삼성증권 연구원은 “예상을 뛰어넘는 회사채 시장의 강세가 예년과 같이 A등급까지 파급될지 여부가 관심”이라며 “우량등급과 비우량등급의 스프레드가 확대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A급 회사채 시장을 지원해 줄 정책적 배려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장현주 기자 blackse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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