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재의 경영 인사이트] 조용한 직원, 조용한 고객

입력 2023-01-11 17:37   수정 2023-01-12 00:19

2022년 7월 동영상 플랫폼 틱톡에 올라온 짧은 영상 한 편이 세계적으로 큰 열풍을 일으켰다. 미국 뉴욕에 거주하는 엔지니어 자이들 펠린이 올린 ‘조용한 사직에 대하여(on quiet quitting)’다. 그는 “일은 삶이 아니다”, “당신의 가치는 노동 결과로 정의되지 않는다”, “허슬 문화(hustle culture)를 지지하지 마라”고 얘기하며 조용한 사직을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허슬 문화란 직장인들이 개인의 삶보다 일을 중시하고 회사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치겠다는 생각으로 일하는 방식을 일컫는다. 미국 실리콘밸리 기업에서 시작해 다른 기업들로 확산된 관행이다. 한국에서도 과거 오랫동안 자리 잡았던 방식이다.

조용한 사직의 핵심은 ‘일과 삶을 동일시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정해진 업무 시간에 주어진 일만 수행한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실제로 직장을 그만두는 것은 아니지만, 직원의 마음이 회사를 떠나 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사직에 가깝다. 마음만 먹으면 더 할 수 있지만 자기가 받는 보상만큼만 일하겠다는 것이다. 맡은 일도 제대로 안 하면서 월급만 꼬박꼬박 챙겨가는 ‘월급 루팡’과는 다르다. 미국 기업에선 ‘조용한 사직’에 해당하는 직원이 절반을 넘는다고 한다.

작년 10월 경기 판교 데이터센터의 화재로 카카오톡, 카카오페이, 카카오모빌리티 등 카카오 서비스가 먹통이 됐다. 비상사태 상황에서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앱 ‘블라인드’에 카카오 직원 A씨의 “내가 장애 대응 안 하는 이유”라는 글이 게재됐다. “나라 구하는 보람으로 하는 일도 아니고 오너도 자본주의를 좋아한다는데 책임감 같은 거 가질 필요 없지 않나? 장애 대응 보상 가이드라인 물어보니 무급 맞다길래 쿨하게 노는 중.” 이에 대해 “무책임하다”고 비난하는 의견과 “저게 현명한 태도다. 요즘 세대의 생각을 대변한 것”이라고 옹호하는 의견이 엇갈리며 커뮤니티를 뜨겁게 달궜다. 조용한 사직이 한국에서도 확산되고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다. 한 조사에 따르면 ‘딱 월급 받는 만큼만 일하면 된다’는 2030세대 직장인이 70%라고 한다.

부부 싸움에 대한 특강에 간 적이 있다. 연사가 청중에게 한 가지 질문을 던졌다. “여러분, 최근 5년간 부부 싸움을 한 번도 안 하신 분 계신가요?” 순식간에 주위가 조용해졌다. 그러다 한 신사분이 손을 번쩍 치켜들었다. 일제히 그쪽을 쳐다봤다. ‘저런 고매한 인격을 가진 사람’이 누군가 궁금해하며. 그런데 갑자기 앙칼진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이고 정말, 내가 참고 사니까, 이 양반 미쳤구먼….”

아마 그 신사분은 부인이 바가지도 안 긁고 잔소리도 안 하니까 부부간에 아무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 것 같다. 그런데 부인은 남편이 VIP라 조용히 지내고 있었나 보다. 여기서 VIP는 ‘귀빈’(very important person)이 아니다. ‘구제불능 인간’(very impossible person)을 의미한다. 목 아프게 말해 봐야 상대가 변화될 가능성이 전혀 없으니 아예 포기하고 지낸 것이다. 그런데 남편이 잘난 척하며 손을 든 것을 보고는 도저히 못 참고 한마디 한 것이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고객이 조용하다고 해서 만족했다고 착각하면 오산이다. 한 통계에 의하면 불만족 고객의 10% 이하만이 불평을 토로한다. 90%는 침묵을 지킨다. 불평을 늘어놓지 않지만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고객’이다. “떠날 때는 말 없이…”라는 노래 가사도 있지 않은가.

조용한 직원이든 조용한 고객이든, 그 조용함에는 위험이 숨겨져 있다. 조용한 사직은 동료나 상사가 세밀하게 관찰하지 않으면 파악하기 어렵다. 게다가 심각한 것은 이런 현상이 우수한 직원 사이에서 확산된다는 점이다. 결과적으로 조직의 성과와 역량이 하향 평준화될 수밖에 없다. 고객의 조용한 이탈도 마찬가지다. 조용한 사람이 분노하면 더 무서울 수 있다. 참고 참다가 마음이 싸늘하게 돌아서기 때문이다. 주위를 살펴보라. 조용한 직원도, 조용한 고객도 많이 있을 것이다. 이 고요함이 진정한 평안인가, 아니면 이미 마음은 떠나간 ‘영혼 없는’ 침묵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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