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한파가 글로벌 공급망 붕괴에서 비롯돼 회복에 시간이 걸린다. 코로나19와 자원 무기화에 따른 물가 급등을 안정시키려면 경기 악화를 감수하더라도 고금리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미국은 글로벌 공급망을 자국 중심으로 재편하고 중국이 추격할 엄두를 내지 못할 정도로 강화하고 있다. 미국은 파격적인 세제 지원 등으로 한국의 첨단기술 제조기업을 탐내고 있다. 한국이 투자환경을 획기적으로 개선하지 않으면 고임금 일자리가 미국으로 유출돼 기득권층 노동시장도 충격에 빠지게 된다. 미국의 경쟁력인 풍부한 고숙련 노동력과 높은 생산성을 따라잡아야 자본과 일자리 유출도 멈춘다.
경기 한파는 취약계층일수록 더 춥다. 고용 축소의 직격탄을 맞기 때문이다. 경기가 회복돼도 취약계층이 빛을 보는 데 시간이 더 걸린다. 신흥국가도 경기 한파에 대응하기 위해 저렴한 인건비를 경쟁력으로 삼아 한국 기업을 유치하고 있다. 중국이 고도성장할 당시 한국의 중소기업은 경쟁력이 떨어져 비정규직 고용을 늘려 버텼는데, 이제 그 대상이 베트남, 인도네시아, 인도 등으로 확대됨에 따라 취약계층의 일자리가 더 위축될 가능성이 크다. 이런 문제를 피하려면 부가가치가 높은 일자리가 국내에 많이 만들어지고, 일하는 데 필요한 숙련기술을 취약계층이 쌓을 수 있도록 노동 환경을 바꿔야 한다.
세계 경제 질서의 전환과 경기 한파는 한국에는 위기이자 기회다. 노동 개혁으로 취약계층도 노동의 가치를 존중받을 수 있다면, 노동력이 확대되고 생산성이 올라가 경기 한파를 이겨낼 수 있다. 이뿐 아니라 취약계층의 소득이 늘고 불평등은 줄어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도 해소된다. 하지만 노동 개혁을 막연하게 반대하는 목소리가 크다. 노동 개혁에 친(親)자본·반(反)노동 프레임을 씌우고, 반(反)노조라고 낙인찍어 혼란스럽게 한다. 자본과 노동을 이분법적 대립 관계로 보면 일자리를 해외로 떠나게 만들고, 취약계층을 늘리며 불평등을 키울 뿐이다. 노동 개혁은 여야 문제나 보수와 진보의 문제가 아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노동에 대한 시각의 변화다. 일자리와 소득이 자본과 노동의 관계보다 기술과 국제질서 변화에 좌우된 지 오래인데 여전히 과거에 매달리고 있다. 노동운동이 이런 점을 놓친다면 기득권을 지키고 불평등을 키우게 된다. 미국보다 디지털 인프라 구축이 앞서 있고, 국민의 의식이 역동적이며, 근로자의 교육 수준이 높은데도 불구하고 장점을 살리지 못하고 있다. 이런 장점을 살리는 미래지향적인 노동 개혁을 하면 취약계층도 자기 능력을 발휘하고, 경제는 지속 성장하고 불평등은 줄어든다. 새해는 노동 개혁의 온기로 경기 한파를 녹이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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