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증시, 재붕괴설 vs 골디락스론 대논쟁 [한상춘의 국제경제 읽기]

입력 2023-01-15 17:29   수정 2023-01-16 01:02

1990년대 후반 신경제 신화를 낳은 빌 클린턴 정부 시절 이후 25년 만에 미국 경제를 두고 ‘골디락스’라는 용어가 나왔다. ‘숲속을 가던 배고픈 소녀가 곰이 차려 놓은 너무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음식을 맛있게 먹었다’는 영국의 전래동화에서 유래한 골디락스는 이보다 좋아질 수 없는 이상적인 경제 국면을 말한다.

올해 스태그플레이션을 우려하던 미국 경제를 두고 연초부터 갑작스럽게 골디락스라는 용어가 나온 것은 매달 초 발표되는 고용지표 때문이다. 작년 12월 실업률이 완전고용 수준인 3.5%로 낮게 나와 경기침체 우려를 불식했다.

인플레이션 우려도 작년 12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2020년 5월 후 처음으로 전월 대비 감소세를 보임에 따라 약해지고 있다. 이제 마지막으로 남은 것은 서비스 분야의 임금과 물가 간 악순환(wage-price spiral) 고리가 차단되느냐 여부다. 임금을 제외하고는 인플레를 구성하는 대부분 항목의 물가가 하락세로 돌아섰기 때문이다.

올해 증시에서 골디락스 장세가 나타날 것인가에 대한 판단은 최근과 비슷한 상황이 닥친 1980년대 초 미국 중앙은행(Fed)이 어떻게 대처했는지부터 이해해야 한다. 당시 Fed에서는 우선순위를 “물가 안정에 둘 것인가” 아니면 “경기 부양에 둘 것인가”를 놓고 난상토론이 벌어졌다. 후일 이 설전은 ‘볼커 모멘텀’과 ‘역볼커 모멘텀’ 간 대혈투로 비유된다.

평행선을 달리던 끝에 Fed는 볼커 모멘텀을 선택해 힘겹게 ‘물가 안정’이라는 설립 목표를 지킬 수 있었다. 경기 부양 과제는 재무부로 넘어갔다. 재정정책도 케인지언의 총수요 관리대책이 한계에 봉착하자 세율 인하 등을 통해 경기를 부양하는 공급 중시 대책으로 선회했다.

골디락스란 용어가 처음 나온 1990년대 후반 이후 저물가 국면이 굳어질 움직임을 보이자 볼커 모멘텀도 흔들렸다. 고민 끝에 Fed는 2012년 고용 창출을 양대 책무로 설정해 작년 3월 이전까지 물가 안정보다 우선순위에 두고 통화정책을 운용했다.

뒷전으로 물러날 뻔했던 볼커 모멘텀이 다시 힘을 얻은 것은 코로나19 사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을 거치면서 Fed의 통화정책 여건에 또 한 차례 격변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성장과 물가 간에는 종전의 ‘고성장-저물가’에서 ‘저성장-고물가’로, 고용과 성장 간에는 ‘고용 없는 성장(jobless recovery)’에서 ‘고용이 풍부한 저성장(jobfull downturn)’으로 바뀌었다.

뉴노멀 통화정책 여건에 선제적으로 대처하지 못한 Fed는 작년 3월 이후 인플레가 목표선의 네 배 가깝게 웃돌자 제롬 파월 의장과 강경 매파를 중심으로 뒤늦게 볼커 모멘텀 방식으로 금리를 올렸다. 과연 올해도 볼커 모멘텀 방식으로 금리를 올릴 것인가가 증시에 골디락스 장세가 올 것인가를 결정할 것으로 예상된다.

Fed는 3대 난제에 걸려 있다. 인플레를 안정시키기 위해 긴축을 단행하면 고부채에 따른 원리금 상환 부담이 커지고 실물경기는 더 침체한다. 반대로 실물경기를 살리기 위해 완화정책을 고집하면 인플레가 증폭되고 부채가 급증하는 트릴레마 고통을 겪는다.

올해 초에 열린 미국경제학회에서는 트릴레마 해결책으로 최근처럼 심리 요인이 경제 활동에 크게 미치는 상황에선 기대심리부터 차단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데 공감대가 형성됐다. 합리적 기대가설에 따르면 인플레 기대심리를 차단하지 못하면 임금과 인플레 간 악순환 고리가 형성되기 때문이다.

인플레 기대심리를 차단하는 최선책은 통화정책의 생명인 ‘선제성’을 유지하는 길이다. 이번처럼 조기 진단에 실패해 선제성을 잃은 상황에서도 금리를 올릴 때 초기에 대폭 끌어올려야 인플레 기대심리를 차단할 수 있다고 본다. 작년 3월 이후 Fed가 회의 때마다 금리 인상 폭을 한 단계씩 끌어올린 것도 같은 맥락에서 나온 조치다.

인플레 기대심리를 차단하는 것은 경기 회복에도 도움이 된다는 것이 통화론자의 시각이다. 기대심리가 안정되면 기업은 실질 비용 개선으로 설비투자를 확대하고 국민은 실질소득 증대로 소비를 늘릴 수 있다고 본다. 과연 3대 난제를 풀 수 있을 것인지? 현재로서는 반반(fifty-fifty)이다. 올해 골디락스에 대한 기대를 저버릴 수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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