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감별사 논란

입력 2023-01-16 18:05   수정 2023-01-17 00:24

병아리 암수를 가려내고 보석, 골동품 가치를 매기는 일을 하는 사람을 일컫는 감별사(鑑別師)가 정치판에 ‘이종교배’된 것은 2015년 12월이다. 이듬해 4월 20대 총선을 앞두고 대구·경북(TK)지역 새누리당 경선 후보 사이에선 친박(친박근혜) 마케팅이 과열됐다. 그러자 조원진 새누리당 의원이 비박계 유승민 후보 대항마인 이재만 후보의 선거사무소(대구 동을)를 찾아 “내가 (지지하러) 가는 후보가 진실한 사람”이라며 ‘진박 감별사’를 자처하며 교통정리에 나섰다.

이후 찐박, 탈박, 대박, 범박, 변박, 짤박, 호박, 애박, 복박, 배박, 항박 등 파생어가 춤을 췄다. 당권 장악을 위해 ‘진박 후보’ 감별에 나선 친박계는 비박계 김무성 대표와 혈투를 벌였다. ‘옥새 나르샤’ 파동까지 겪으면서 새누리당은 참패했고, 잘 알려진 대로 대통령 탄핵과 보수 진영 궤멸로 이어졌다. “내가 진박”이라고 외친 그 많은 사람이 등을 돌리며 ‘배박’한 것은 비정한 정치의 단면이다.

여당인 국민의힘 대표 경선을 앞두고 ‘진박 감별사’ 논란이 재연되고 있다. 친윤(친윤석열) 측의 불출마 압박을 받고 있는 나경원 전 의원이 “제2의 진박 감별사가 쥐락펴락하는 당이 됐다”고 비판하면서다. 친윤 핵심 장제원 의원이 “반윤의 우두머리, 제2의 유승민”이라고 반박하고, 다른 후보들까지 뛰어들면서 이전투구가 됐다. 당초 이 싸움은 비상식적인 일들의 연속이었다. 나 전 의원이 조율 없이 ‘자녀 출산 시 대출 원금 탕감’을 거론하고,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직을 맡은 지 3개월 만에 당 대표에 나가려고 한 것부터 석연찮다. 윤석열 대통령이 해임이라는 강수를 두자 친윤 의원들이 공개적으로 나 전 의원을 공격하면서 싸움판을 키운 것도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어디에도 갈등 조정력은 안 보인다. 지도부가 친윤 후보를 밀기 위해 ‘당원 투표 100%’ ‘결선 투표’를 도입한 것도 무리수다.

미국 정치학자 엘머 샤츠슈나이더의 말대로 갈등은 민주주의의 엔진이다. 그러나 갈등이 관리 범위 내에 있도록 하는 게 정치다. ‘감별사’ 논란이 민심의 눈 밖에 벗어났을 때 어떤 결과를 초래했는지는 이미 알고 있다.

홍영식 논설위원 ysho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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