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애틀랜타 하츠필드잭슨국제공항에서 남동쪽으로 40분을 달리면 나타나는 조지아주 커빙턴시. 울창한 숲 지대 한복판에 SKC 자회사 앱솔릭스의 반도체 기판 공장이 자리잡고 있다. 이 공장은 플라스틱이 아니라 유리로 만든 반도체 기판을 생산할 예정이다. 유리 기판을 쓰면 반도체 칩을 더 촘촘하게 얹을 수 있다. 벌써 업계에선 “유리 기판이 반도체 성능을 높이는 ‘게임체인저’가 될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지난 10일 방문한 1만2000㎡(약 3630평) 규모의 앱솔릭스 공장 부지엔 크레인, 굴삭기 등 중장비의 터 잡기 공사가 한창이었다. 지난해 11월 공사가 시작된 축구장 두 개 크기의 공장은 철골 등 뼈대만 들어선 상태였다. 공장 바닥은 드문드문 움푹 패 있고, 빗물도 고여 있었다.
앱솔릭스는 SKC와 세계 최대 반도체 장비회사인 미국 어플라이드 머티어리얼즈(AMAT)가 합작한 반도체 기판 업체다. 이 회사는 2억4000만달러(약 2980억원)를 투자해 올해 12월 연산 1만2000㎡ 규모(반도체 유리 기판 크기) 공장을 완공한다. 내년부터는 제품을 본격 양산할 계획이다.
완공 이후에도 3억6000만달러(4460억원)를 추가로 투자해 생산능력을 연산 7만2000㎡ 규모로 늘릴 예정이다. 현지인 570여 명을 채용할 계획도 세웠다. 오준록 앱솔릭스 대표이사는 “유리 기판은 외국 업체가 주도하는 반도체 경쟁의 패권을 바꿀 제품”이라고 설명했다.
반도체 회로를 미세화하는 것이 점점 어려워지면서 기판 위에 칩과 적층세라믹커패시터(MLCC) 등을 효율적으로 배치하는 패키징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문제는 기판의 내구성이다. 칩과 MLCC를 많이 배치하면 플라스틱 기판이 휘어진다. 패키징 공정의 불량률도 올라간다.
앱솔릭스는 플라스틱보다 단단한 유리로 기판을 만드는 대안을 제시했다. 유리 기판은 겉이 아닌 안에 MLCC를 심을 수 있다. MLCC가 차지하던 공간을 활용해 반도체 칩을 더 넣을 수 있다는 뜻이다. 칩의 밀집도도 높일 수 있다. 같은 크기의 플라스틱 기판보다 더 많은 반도체 칩을 넣을 수 있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현재 앱솔릭스는 글로벌 CPU(중앙처리장치)·GPU(그래픽처리장치) 업체들과 유리 기판 디자인을 협의 중이다.
관건은 수율(완제품 중 양품 비율)이 될 전망이다. 경쟁사들이 유리를 기판 소재로 쓰지 않는 것은 수율을 확보하는 게 힘들어서다. SKC가 플라스틱 기판을 쓸 때와 비슷한 수준의 수율을 확보할 경우 업계 판도가 달라진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박원철 SKC 사장은 “2차전지 소재와 반도체를 비롯한 고부가가치 사업으로 비즈니스 모델을 재편하고 있다”며 “사업 재편의 핵심인 유리 기판 사업을 목숨 걸고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커빙턴(미국)=김익환 기자 lovep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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