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보도 못보던 남자는 어떻게 '세계 3대 테너' 됐나 [김희경의 영화로운 예술]

입력 2023-01-17 17:57   수정 2023-01-18 00:25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테너’ 하면 많은 이가 이 사람을 떠올린다. 이탈리아 출신 성악가 루치아노 파바로티(1935~2007)다. 친근하고 소탈한 외모와 인상, 아름다운 음색과 웅장한 목소리는 그가 세상을 떠난 지 16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사람들에게 깊이 각인돼 있다.

파바로티의 생애를 다룬 론 하워드 감독의 다큐멘터리 ‘파바로티’(2020)엔 그의 생전 인터뷰와 노래하는 모습 등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그는 “100년 후에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나요?”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한다. “오페라를 친근하게 느끼게 해준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파바로티는 제빵사였던 아버지를 따라 성가대 활동을 하며 노래를 익혔다. 하지만 정식으로 음악을 배우지는 않았다. 그러다 학교 보조교사로 일하던 19세 때 성악가의 길을 가기로 결심했다.

처음엔 쉽지 않았다. 음악학교에 다닌 적이 없는 파바로티는 악보를 제대로 볼 줄 몰랐고, 대본도 잘 외우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특유의 긍정적인 마인드로 끊임없이 연습하며 자신을 단련했다. 악보를 잘 읽지 못해도 자신만의 표시로 음악을 익히고 기록했다.

파바로티는 26세에 이탈리아에서 열린 ‘아칼레 페리 국제 콩쿠르’에서 수상하며 이름을 알렸다. 이후엔 오페라 ‘라 보엠’을 시작으로 ‘투란도트’ ‘사랑의 묘약’ 등 수많은 오페라에 출연했다. 파바로티가 꿈꾼 대로 ‘투란도트’의 ‘네순 도르마’ 등 오페라의 테너 아리아들이 그를 통해 더욱 사랑받았다.

그는 ‘하이C의 제왕’으로 불린다. 37세에 출연한 도니체티의 오페라 ‘연대의 딸’에서 테너의 최고 음역대인 3옥타브 도에 해당하는 하이C가 아홉 번이나 나오는 아리아 ‘친구여, 오늘은 기쁜 날’을 거뜬하게 소화해 붙은 별명이다. ‘벨칸토 창법’을 완벽하게 구사한 테너로도 평가받고 있다. 벨칸토는 ‘아름다운 노래’라는 뜻의 이탈리아어로, 그 의미처럼 아름답고 매끈하게 노래를 부르는 것을 이른다.

역사상 파바로티만큼 대중적인 인기를 누린 테너는 찾아보기 힘들다. 그와 함께 3대 테너로 불린 플라시도 도밍고, 호세 카레라스 가운데서도 인기가 가장 많았다.

세 사람이 ‘스리 테너 콘서트’를 연 것도 의미가 깊다. 이들은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부터 시작해 월드컵이 열리는 4년마다 콘서트를 함께 개최했다. 마지막 콘서트는 2002년 한·일 월드컵이었다. 2006년 독일 월드컵엔 파바로티가 췌장암에 걸려 아쉽게도 함께하지 못했다.

다양한 예술 장르 가운데 오페라는 유독 장벽이 높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오페라는 누구나 재밌게 감상할 수 있는 장르다. 흥미진진한 스토리와 함께 아름다운 아리아도 즐길 수 있다. ‘오페라를 친근하게 만든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어 했던 파바로티의 노래를 들으며 오페라와 가까워져 보는 건 어떨까.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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