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조건 15%는 떼간다…해외서 稅감면 받는 200여 기업 '날벼락'

입력 2023-01-17 18:15   수정 2023-01-26 16:49



삼성 SK 현대자동차 LG 등 국내 대기업들이 내년 초 시행되는 글로벌 최저한세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법인세를 비롯한 각종 세제 관련 혜택을 기대하고 설립한 해외 법인이 많은데, 이 제도가 시행되면 그 혜택이 모두 사라져서다. 더 큰 문제는 한국 기업들만 글로벌 최저한세에 따라 더 많은 세금을 내야 하는 최악의 상황이 생길 수도 있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관련 법안을 처리한 나라는 한국을 포함해 10여 개국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미국과 유럽연합(EU), 일본 등 주요 경쟁국은 제도 도입의 유불리를 신중히 검토하고 있는데 한국이 무턱대고 법안을 서둘러 통과시킨 것 아니냐는 불만이 기업들 사이에서 나오고 있다.
헝가리·베트남 법인도 세율 15% 적용
글로벌 최저한세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추진하는 국제조세 개편의 두 축 중 하나다. 첫 번째 축(필러1)은 구글 등 디지털 서비스 기업이 세계 각국에서 벌어들인 만큼 세금을 매기자는 취지의 ‘디지털세’다. 이들 기업은 외국에 사업장을 두지 않은 채 판매만 해 막대한 이익을 거두지만, 해당 국가에 세금을 거의 내지 않는다. 큰 틀의 합의는 이뤄졌지만 세부 항목에 대한 논의는 지지부진하다. 미국과 EU의 입장이 팽팽하게 엇갈리고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 축(필러2)이 바로 글로벌 최저한세다. 글로벌 다국적 기업이 법인세율이 낮은 나라나 조세피난처에 자회사를 세워 세금을 적게 내는 것을 막기 위한 제도다. 해외 자회사에 최저한세(15%)보다 낮은 세율이 적용되면, 모회사(본사)는 추가 세액을 본사 소재지 국가에 납부해야 한다. 본사가 자리잡은 국가가 글로벌 최저한세 제도를 도입하지 않은 경우엔 자회사 소재지 국가 등 다른 나라들이 추가 세액을 과세할 수 있다.


어느 나라에 법인을 세우더라도 최저 15%의 세율이 적용된다는 의미다. 스위스나 버진아일랜드, 헝가리 등 20여 개 저세율 국가에 자회사를 설립한 기업들은 세 부담이 늘어난다. 베트남을 비롯해 명목세율은 15% 이상이지만 각종 조세 혜택으로 실효세율이 낮은 국가에 진출한 법인들도 마찬가지다.

직전 4개 사업연도 중 2개 연도 이상의 연결재무제표상 매출이 7억500만유로(약 1조원) 이상인 다국적 기업이 적용 대상이다. 한국 기업 200곳 이상이 여기에 포함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기차 배터리 기업인 SK온과 삼성SDI 등은 헝가리(법인세율 9%)에 공장을 세웠고, 삼성전자를 비롯해 수많은 기업이 베트남에 자회사를 두고 있다. 상당수 기업들은 해외에서 받은 세제 혜택이 무용지물이 될까봐 전전긍긍하고 있다. 일각에선 “해외 투자를 한 보람이 사라지는 것 아니냐”는 말까지 나온다.
美·EU 모두 장고 중인데…
글로벌 최저한세 논의는 2021년 마무리됐다. 세부 항목 일부만 남겨둔 상태다. 문제는 글로벌 기업을 다수 보유한 국가들이 모두 법안 통과를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는 점이다. 글로벌 최저한세 도입 논의를 주도한 미국과 EU도 마찬가지다. 일각에선 유불리를 따지기 위해 주판알을 튕기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당초 약속대로 내년 1월 시행 여부가 불투명하다는 전망도 제기된다.

이렇게 되면 지난해 이미 법안을 통과시킨 한국이 난처해진다. 한국 정부는 지난해 7월 발표한 세제개편안에 글로벌 최저한세 관련 내용이 담긴 국제조세조정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포함시켰고, 국회는 지난달 이 법을 처리했다. 만약 미국과 EU 등이 내년부터 시행하지 않는다면, 한국도 법을 다시 개정해 시행 시기를 늦춰야 하는 처지다.

국내 기업들이 대한상공회의소를 찾아가 정부에 건의문을 내달라고 하는 배경이다. 경제계 관계자는 “가뜩이나 글로벌 경기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는데 한국 기업의 활동을 위축시키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며 “글로벌 최저한세는 해외 자회사 일부를 철수하거나 이전해야 할 정도의 큰 이슈인데, 기업들과 제대로 된 소통 없이 법을 처리해 안타깝다”고 말했다.

정지은/박한신 기자 jeo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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