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화 품종을 연구하는 정재아 농촌진흥청 연구사는 17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품종 주권’을 강조했다. 그는 병충해에 강한 국화 ‘백강’을 개발한 품종 전문가다. 이 품종은 2018년부터 국내에서 주로 판매하다가 지난해부터 일본으로 수출하고 있다. 작년에만 30만 송이의 국화가 일본으로 나갔다.
2006년만 해도 국산 품종의 국화를 수출한다는 생각은 하기 어려웠다. 당시 국화 시장에서 국산 품종 점유율은 1%에 불과했다. 일본산 품종이 주류였다. 정 연구사가 국화 연구에 뛰어든 건 2011년이다. 백마 품종 국화가 일본에서 인기를 끌면서 품종 국산화율이 15% 안팎까지 높아진 때였다. 정 연구사는 “그 무렵부터 본격적으로 기술과 품종을 수출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정 연구사는 이후 약 12년간 큰 국화 3종, 스프레이 국화 31종 등을 개발했다. 백강을 비롯해 금빛누리, 피치팡팡 등이 그의 대표작이다. 이 같은 품종 개발의 성과로 국화의 품종 국산화율은 지난해 33.9%까지 높아졌다.
이 기간 화훼산업은 주요 절화(가지째 꺾은 꽃) 수출국인 콜롬비아와의 자유무역협정(FTA) 체결로 위기감이 커졌다. 25%에 이르는 화훼분야 관세가 철폐돼 외국산 카네이션, 장미 등이 대거 국내 시장에 유입되면서다. 정 연구사는 시장 개방이 국내 화훼산업에 전화위복의 기회가 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백강 품종 국화는 일본, 베트남, 중국 등에서 특허 출원을 하고 있다”며 “품종 수출까지 성공하면 종자주권을 지키는 것을 넘어 로열티를 받는 히트상품이 나올 수도 있다”고 말했다.
과일과 채소 품종 개발도 활발하다. 딸기가 대표적이다. 딸기는 2005년 품종 국산화율이 9.2%대에 그쳤다. 하지만 충남농업기술원 딸기연구소에서 개발한 설향 품종이 등장하면서 상황이 급반전됐다. 당도가 높고 흰가루병에 강한 게 이 품종의 강점이다. 농민들은 그동안 키우던 육보와 장희 등 일본 품종 대신 설향을 심기 시작했다. 2010년 품종 국산화율은 61.1%를 기록해 외국 품종을 앞질렀고, 올해 9월 기준 97.8%까지 높아졌다.
단감은 현재 국내 재배 품종 중 80%가량이 일본의 부유 품종이다. 하지만 최근엔 봉황, 연수, 원미, 감풍 등 국산 품종이 개발돼 일본 품종을 대체하고 있다. 원미와 감풍은 해외 수출의 선봉 역할을 하고 있다. 이들 품종을 개발한 마경복 농진청 연구사는 “홍콩 시장에 제품 판촉행사를 한 결과 재구매 의사가 높았다”며 “스페인과 호주 등에는 품종 출원과 기술이전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한약재인 감초도 국산화에 성공했다. 감초 품종인 ‘원감’이 개발돼 식품의약품안전처 등록 절차를 밟고 있다. 농진청은 원감 품종 등록이 완료되면 농가에 적극 보급해 감초 국산화율을 5년 안에 33%까지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정부뿐 아니라 일반 기업과 농민 차원의 종자사업 경쟁도 치열하다. CJ제일제당은 배추와 콩나물 종자를 개발해 농가에 보급하고 있다. 페인트로 유명한 노루그룹도 종자회사 더기반을 설립해 종자 사업을 벌이고 있다.
강진규 기자
제작 지원=FTA이행지원 교육홍보사업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