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음악계에서 ‘압도적인 티켓 파워’를 자랑하는 한국인 연주자들이 올해 다채로운 선율로 국내 팬들을 만난다. 한국인 최초로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 우승 기록을 쓴 피아니스트 조성진과 ‘반 클라이번 국제 콩쿠르’에서 최연소 우승을 차지하며 세계를 놀라게 한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대표적이다. 이들의 무대는 여타 아이돌 공연의 인기를 능가하는 ‘피케팅’(피 튀기듯 치열한 티케팅) 사례로 불린다.
지난해 9월 조성진의 협연이 예정된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 내한 공연이 티켓 판매 개시 40초 만에 전석 매진을 기록한 것이 일례다. 이 공연의 VIP석 가격은 40만원, 그 외 공식 좌석 가격은 10~35만원으로 책정돼 있었다. 같은 해 열린 임윤찬의 리사이틀 공연 또한 티켓 판매를 개시하자마자 좌석이 모두 동나면서 화제를 모은 바 있다. 소속사 대표조차 부모님의 좌석을 예매하지 못했다고 토로했을 정도다.
이들이 21세기 클래식 음악계를 끌고 가는 주역이라면, 한국의 클래식을 세계에 알린 선구자이자 현재까지 건재한 티켓 파워를 과시 중인 거장들도 있다. 바로 전설의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와 한국을 대표하는 지휘자 겸 피아니스트 정명훈이 그렇다. 이들은 올해 11년 만의 앙상블 공연을 연다. 그야말로 한국 클래식 음악의 역사를 쓴 거장들과 세계가 열광하는 젊은 연주자들의 음악을 온전히 맛볼 수 있는 한 해가 열린 셈이다.
올해 국내외를 오가며 가장 바쁜 일정을 소화하는 피아니스트는 단연 조성진이다. 세계 최정상급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은 물론 단독 리사이틀까지 계획하고 있어서다. 공연의 포문은 오는 3월로 예정된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와의 협연 무대로 연다. 475년 전통을 지닌 이 악단은 유럽 최고(最古)의 오케스트라로 꼽힌다. 베버, 바그너,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등 전설의 음악가들이 거쳐 간 명문 악단으로 특히 잘 알려져 있다. 이번 공연의 지휘봉은 2012년부터 악단의 수석 객원 지휘자를 지내고 있는 정명훈이 잡는다. 정명훈과 조성진은 앞서 2018년에 서울시향 지휘자와 협연자로 인연을 맺은 바 있다.
이번 공연에서 조성진은 차이콥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을 들려줄 예정이다. 이 곡은 조성진에게 남다른 의미가 있는 작품이다. 자신의 대표 레퍼토리를 꼽을 때 쇼팽 피아노 협주곡 1번과 더불어 빠지지 않고 거론하는 곡이다. 조성진이 2014년 아르투르 루빈스타인 국제 피아노 콩쿠르 결선에서 연주한 작품이기도 하다. 이 작품은 현존하는 모든 협주곡 중 가장 유명한 도입부를 가진 곡으로, 피아니스트에게 고난도 기교와 섬세한 표현력을 요구하는 대작이다. 강렬한 타건과 러시아 특유의 서정성이 담긴 선율을 특징으로 한다.
오는 11월에는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4번을 연주한다. 세계 3대 관현악단으로 꼽히는 베를린 필하모닉의 내한 공연에서다. 조성진은 앞서 사이먼 래틀이 이끈 2017년 베를린 필하모닉 아시아 투어 공연에서 협연자로 호흡을 맞춘 바 있다. 이번 공연에서는 현 음악감독인 키릴 페트렌코가 포디엄에 오른다.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4번은 베토벤이 남긴 다섯 편의 피아노 협주곡 중 가장 독창적인 곡으로 평가받는 걸작이다. 조성진은 이미 국내외 여러 무대에서 이 곡을 선보이면서 작품 소화력과 연주력을 두루 인정받은 바 있다.
2019년 부다페스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의 내한 공연에서 조성진은 특유의 서정적인 감수성으로 이 작품의 매력을 온전히 살렸다는 호평을 받았다.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4번은 섬세한 선율 진행과 베토벤 특유의 장엄한 카리스마를 살려 연주하는 것이 관건이다. 조성진은 협연 무대 외에도 오는 7월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단독 리사이틀을 열 예정이다.
지난해 신들린 듯한 연주로 신드롬을 일으킨 피아니스트 임윤찬도 해외 유명 오케스트라의 협연 무대에 오른다. 먼저 오는 7월 스위스 최고(最古) 악단인 루체른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내한 공연에서 지휘자 미하엘 잔데를링과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0번을 협연한다. 20번은 모차르트가 남긴 27편의 피아노 협주곡 중 최고의 걸작이라 평가받는 작품이다. 모차르트 최초의 단조 협주곡으로 암울한 색채와 극적인 표현, 긴장감 넘치는 선율 진행을 특징으로 한다.
오는 11월에는 같은 달 조성진의 공연 레퍼토리이기도 한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4번을 연줗주한다. 정명훈이 지휘하는 독일 뮌헨 필하모닉의 내한 공연에서다. 정명훈과 임윤찬은 지난해 원코리아 오케스트라 공연에서 호흡을 맞춘 바 있다.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0번과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4번은 임윤찬이 처음으로 공식 무대에서 연주하는 작품들이다. 반 클라이번 국제 콩쿠르 결선에서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3번, 준결선에서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2번을 연주하면서 고전주의 작품의 연주력을 입증한 만큼 올해 협연 무대에서도 뛰어난 작품 해석력을 뽐낼 것이란 게 업계의 중론이다.
한국 클래식 음악계를 언급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두 명의 거장,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와 지휘자 겸 피아니스트 정명훈은 앙상블 무대로 팬들과 만난다. 오는 9월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리는 트리오 공연을 통해서다. 이들 남매가 한 무대에 오르는 건 11년 만이다. ‘정트리오’의 또 다른 주역 정명화를 대신해 중국이 낳은 세계적인 첼리스트 지안 왕이 함께한다. 앞서 정경화는 다음 달 14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오랜 기간 호흡을 맞춘 피아니스트 케빈 케너와 듀오 콘서트를 연다. 이 공연에서 정경화는 그리그 바이올린 소나타 3번, 브람스 바이올린 소나타 1번, 프랑크 바이올린 소나타를 들려줄 예정이다.
김수현 기자 ksoohy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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