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헤어질 결심' 필요한 한·중 경제

입력 2023-01-19 17:47   수정 2023-01-20 00:31

지금은 잊힌 과거의 일이지만,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1991년 소련이 붕괴할 때까지 44년간 냉전 시대로 불린 범세계적 대결의 시대가 있었다. 당시 지구상에는 미국 중심의 서방진영과 소련 중심의 공산진영이라는 적대적이고 상호 단절된 두 개의 세계가 존재했다. 두 세계 사이엔 무역도 여행도 거의 없었고 공식 환전제도나 환율조차 존재하지 않았다. 쌍방 간 광범위한 무역금지 조치가 시행됐고, 허가되지 않은 무역은 이적행위로 간주했다.

당시 경제·기술 분야에서 비교우위를 점했던 미국 진영은 첨단 공산품의 대공산권 유출을 막고자 강력한 수출통제를 시행했는데, 핵심 수단은 1917년 제정된 미국의 대적성국 교역법과 1949년 출범한 서방진영의 대공산권 수출통제위원회(COCOM)였다. 대적성국 교역법은 미국이 ‘적국’으로 규정한 나라들과의 금융 거래와 무역을 차단하는 법률로서 현재도 유효하며 과거 소련, 중국, 북한, 베트남 등의 경제에 장기간 치명적 영향을 미쳤다. COCOM은 그러한 미국의 무역통제 제도를 한국을 포함해 서방진영 전체로 확장한 집단적 수출통제 체제였다. 대공산권 무역통제를 통한 경제적 디커플링(decoupling)은 1990년대 초 소련과 공산권이 일시에 붕괴한 요인 중 하나이기도 했다.

대적성국 교역법과 COCOM이 현시점에 다시 관심의 대상이 된 이유는 미국이 대중국 패권 경쟁에서 경제적 디커플링을 다시 비장의 무기로 꺼내 들었기 때문이다. 미국의 대중국 디커플링은 범세계적 반도체 공급망 통제를 필두로 본격화하고 있다. 현시점에서 경제적 디커플링은 미국이 무력 사용 없이 중국의 패권 도전을 저지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견제 수단이다. 냉전 시대에 별도의 거대 경제공동체를 거느렸던 소련과 달리 중국 경제는 서방진영의 시장경제를 숙주 삼아 기생해 온 ‘기생경제’인 관계로, 숙주와의 디커플링이 심화하면 독자 생존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미국은 1950년 중국의 6·25전쟁 참전을 계기로 대적성국 교역법에 따라 경제 봉쇄를 단행한 후 이를 1980년까지 30년간 유지했는데, 향후 중국이 대만을 침공하거나 한반도 전쟁에 개입할 경우 이 법의 재발동이 예상된다. 미국은 또한 COCOM의 후신인 ‘바세나르 체제’를 통해 첨단 공산품의 대중국 수출을 차단하려 하나, 42개 회원국의 일원인 러시아가 걸림돌이 되고 있어 러시아를 배제한 새로운 수출통제 체제 구축이 추진되고 있다.

이처럼 범세계적 디커플링이 진행되고 안보와 경제가 하나로 통합되는 경제안보 시대에 있어 ‘전략적 모호성’이나 ‘안미경중(安美經中)’ 같은 한가로운 외교가 설 땅은 없다. 중국 경제의 혼돈 상황과 우리의 대중국 무역수지 악화 추세로 보나, 중국의 적대적 대한국 태도와 대다수 우리 국민의 대중국 거부 반응으로 보나, 중국은 궁극적 선택지가 될 수 없다.

이제 부득이 최대 무역국인 중국과 ‘헤어질 결심’을 해야만 한다. 중국은 지난 세월 우리 경제 성장에서 큰 몫을 담당했다. 하지만 이제 중국에 대한 과도한 무역 의존도와 그로 인한 기울어진 양국 관계를 청산하고 호혜 평등한 새로운 관계 정립에 나서야 할 때다. 물론 상당한 경제적 손실이 수반되겠지만, 한국은 서방진영 내에 조성될 ‘중국 없는 시장’의 블루오션에서 중국 대신 ‘세계의 공장’으로 자리 잡을 수도 있을 것이다. 1992년 한·중 수교가 한국 경제에 큰 도약을 가져왔듯이, 자유민주 진영과 중국의 경제적 결별은 한국 경제에 새로운 도약의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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