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자산배분 방식 바꾼다…초장기 포트폴리오 도입 시동

입력 2023-01-20 15:21   수정 2023-01-25 10:16

이 기사는 01월 20일 15:21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국민연금이 초장기 포트폴리오 산정 작업을 추진한다. 재정 추계와 맞춰 기금운용 자산 배분 체계를 새로 설정하겠다는 취지다. 자산군별로 칸막이를 낮춰 이전보다 유연한 운용을 통해 운용 수익률을 끌어올릴 계획이다.

20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국민연금 기금 운용발전 전문위원회(기발위)는 최근 회의를 열고 기준(레퍼런스) 포트폴리오 추진 방식을 논의했다. 국민연금 기발위는 제5차 국민연금 재정계산을 짜기 위해 꾸려진 재정계산위원회의 산하 기구다. 정부가 오는 10월까지 국회에 제출해야 하는 국민연금 종합 운영계획을 마련할 때까지 투자전략, 제도 개선 등 기금운용 방향을 논의한다.

기준 포트폴리오는 국민연금의 전략적·전술적 자산 배분의 지침이 되는 자산배분안이다. 국민연금은 2021년 기준 포트폴리오를 추진했으나 다른 현안에 밀려 도입되지 못했다. 기준 포트폴리오가 도입되면 기존 전략·전술 등 2단계 자산 배분 방식에서 3단계로 늘어난다. 연금은 장기 투자자로 먼 미래를 내다보고 자산 배분에 나서야 하지만 그간 국민연금은 5년·1년 단위로만 자산 배분을 계획해 장기 전망에 대한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됐다.

기발위에 참석하는 한 관계자는 “기준 포트폴리오를 기존대로 20년 시계로 가져갈 것인지, 70년 단위 장기 시계로 가져갈 것인지 논의 중”이라며 “조금씩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 합의해나가고 있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2단계→3단계 배분으로 전문성 보강
국민연금 기발위는 비전문가가 국민연금 자산 배분을 짜는 방식에서 벗어나 체계적으로 자산 배분에 나설 수 있도록 종전 2단계에서 3단계 장기 포트폴리오 마련을 목표로 논의에 나섰다. 비전문가들이 짜는 전략적 자산배분 윗단에 기준 포트폴리오를 마련하면 전략적 자산배분이 갖는 영향력이 줄어드는 효과가 있어서다. 현행 방식은 국민연금 기금위가 전략적 자산 배분을 통솔한다.

기금위는 정부 관료, 각 가입자 단체 위원들로 구성돼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많았다. 보건복지부 장관이 위원장을 맡고 기획재정부·농림축산식품부·산업통상자원부·고용노동부 차관과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등 5명이 당연직 위원으로 참석한다. 여기에 사용자 대표 3명, 근로자 대표 3명, 지역 가입자 대표 6명, 관계 전문가 2명이 위원으로 참여한다.
‘ALM 고려’ 70년 대계획이냐, 국면별 자산배분이냐
현재 논의되고 있는 방안은 크게 두 가지다. 자산부채관리(ALM)를 고려해 재정추계 시계인 70년 단위로 기준 포트폴리오를 짜는 방안과 기금의 성장기, 안정기, 감소기 등 국면별로 쪼개는 방식이 거론된다.

ALM을 고려한 기준 포트폴리오는 보험료 수입·지출 등 재정과 기금운용 간 연결고리 역할을 맡게 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캐나다연금투자위원회(CPPIB)도 75년 단위로 장기 포트폴리오를 사용하고 있다. 다만 이 포트폴리오는 국민연금이 재정 목표나 부채에 대한 합의를 도출하기 어려워 도입되기 힘든 측면이 있다. ALM이란 자산과 부채에 대한 분석으로 리스크 노출을 통제하고 관리하기 위한 시스템이다.

반면 국면별로 하는 방식은 이전에 국민연금이 추진했던 방식과 유사하다. 보험료 지출보다 수입이 많은 성장기, 지출과 수입이 비슷해지는 안정기, 수입보다 지출이 많은 감소기로 나눠 포트폴리오를 구성한다. 이 방식을 도입하면 기금 축적기인 2042년까지 20년 단위 포트폴리오를 짜게 된다.
캐나다연금 참고…위험자산 더 담을지 ‘주목’
기발위 위원들은 국민연금과 기금운용 목표가 비슷한 CPPIB 모델을 참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CPPIB의 기준 포트폴리오는 위험자산과 안전자산으로 간단하게 구성된다. CPPIB는 글로벌 주식 85%, 캐나다국채 15%로 구성하고 있다. 위험자산 85%, 안전자산 15%인 셈이다.

업계는 국민연금의 기준 포트폴리오에서 위험자산 비중이 어떻게 결정되는지가 주목하고 있다. 위험자산 비중이 높아지면 자연스럽게 국내외 주식이나 대체투자가 늘어날 전망이다. ‘자본시장 큰손’인 국민연금이 국내주식이나 대체투자 비중을 조금씩 높이게 되면 금융투자업계에 미치는 영향이 상당할 것으로 관측된다. 국민연금이 이전에 기준 포트폴리오를 도입할 땐 위험자산 비중을 65~85%로 넓게 설정했었다. 기금 축적기에 위험자산 비중을 더 높여야 기금 고갈을 늦출 수 있다는 의견도 많다.
자산 배분 유연화…“개별적으로 위험도 측정”
국민연금 기발위는 기준 포트폴리오 도입으로 자산 배분의 유연성이 커질 것으로 보고 있다. 국내외 주식, 채권, 대체투자에 비중을 설정하는 ‘탑다운’ 방식에서 탈피해 유연한 운용이 가능하도록 자산군별 칸막이를 낮출 수 있다는 것이다. 주식도 종목에 따라 위험도가 다르듯 같은 대체투자, 채권으로 묶여도 건별로 위험 정도는 다양하다. 투자 건별로 위험도를 측정하면 자산군과 관계없이 투자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국내주식, 해외주식 등 자산군별로 비중 제한을 두고 운용하게 되면 빠르게 변화하는 투자 환경에 대응하기 어렵다는 공감대를 형성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해 인플레이션에 따른 고강도 긴축으로 주식과 채권 자산군이 동반 폭락하며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설립 이래 최악의 손실을 낼 것으로 예상된다.

한 관계자는 “금융시장 위기에 빠르게 대처하고 다양한 방식의 투자를 가능하게 하기 위해 기준 포트폴리오를 추진하는 것”이라며 “새로운 투자 상품을 반영해 다양한 자산을 유연하게 담을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류병화 기자 hwahw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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