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G(환경·사회·지배구조)가 국내외 글로벌 기업의 화두로 대두된 지 오래다. 기업의 비재무적 요소인 환경·사회·지배구조를 뜻하는 ‘ESG 경영’은 장기적 관점에서 친환경 경영, 사회적 책임경영 그리고 투명경영을 통해 지속가능한 발전을 추구하는 방식이다. 최근 SK지오센트릭은 사업모델 혁신을 통한 대출 성공으로 자본시장 등 외부 이해관계자들의 인정을 받았다. 화학 사업에서 폐플라스틱 재활용으로 도약하며 탄소 사업에서 그린 사업으로 체질을 바꾸는 노력이 시장의 공감을 얻은 것이다.
SK이노베이션 친환경 화학 사업 자회사인 SK지오센트릭은 지구와 토양을 뜻하는 ‘지오(geo)’와 중심을 뜻하는 ‘센트릭(centric)’을 조합한 것이다. 지구환경을 최우선으로 생각해 폐플라스틱 오염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강력한 의지를 사명으로 표현했다. 1972년 국내 최초의 나프타 분해 설비를 가동해 화학 사업을 영위해온 SK지오센트릭은 폐플라스틱 재활용 중심의 사업모델 혁신에 역점을 두고 사업을 펼치고 있다. 지구를 중심에 둔 의미처럼 순환경제 선두 주자가 목표다.
SK지오센트릭은 2025년까지 SK울산콤플렉스 내 열분해, 고순도 폴리프로필렌(PP) 추출, 해중합 등 3대 화학적 재활용 기술을 한 곳에 모은 울산 리사이클 클러스터를 세계 최초로 조성하고 있다. 2025년까지 약 21만5000m2(약 6만5000평) 부지에 조성 중이며, 연간 25만 톤에 달하는 폐플라스틱을 처리할 수 있는 규모다. 나아가 2027년까지 SK지오센트릭의 글로벌 플라스틱 생산량 100%에 해당하는 연 250만 톤을 직간접적으로 재활용하는 계획도 밝혔다.
ESG 경영 목표 달성하면 금리 감면
SK지오센트릭은 이런 철학을 기반으로 국내 최초로 탄소감축 등 친환경 목표 연계 대출을 통해 대규모 자금을 조달했다. SK지오센트릭이 추진하는 ESG 사업을 대출액·약정금리와 연계하고, 그 목표와 달성도를 객관적 제3기관이 검증하는 ‘지속가능 연계 차입(Sustainability-Linked Loan, SLL)’을 지난해 11월 성공적으로 시행했다. SK지오센트릭은 BNP 파리바를 대표 주관사로, 중국농업은행·중국은행·MUFG은행·크레디아그리콜 CIB 등 글로벌 금융기관으로 구성된 대주단과 함께 3년 만기로 4750억원의 자금을 조달했다.
SLL은 대출금리 설정 방식에 기업의 지속가능 경영활동을 연계한 구조다. 자금조달 시 기업이 설정한 ESG 경영 목표를 달성하면 금리 감면 혜택을 제공하는 구조로 설계된다. SK지오센트릭은 플라스틱 재활용 규모 증대(2025년까지 90만 톤),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2025년까지 2019년 대비 24.9% 감축) 2가지를 SLL과 연계한 목표로 설정했다. 목표 달성 시 우대받는 최종 금리는 시중금리보다 낮은 금리로 약정됐으며, 이로써 연간 감소된 이자 비용은 100억원에 이른다.
지난해 미국중앙은행(Fed)의 급격한 금리인상 등 경색된 글로벌 자본시장 분위기에서 성공한 자금조달 사례이며, 무엇보다 그 방법에서 큰 의미가 있기에 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SK지오센트릭이 추진하는 ESG 사업 청사진이 글로벌 은행의 인정을 받아 새로운 방법으로 자금조달 시장을 뚫은 것이다.
유리한 금리 외 원화 대출이라는 점에서도 주목을 받았다. SLL에 참여한 글로벌 대주단 입장에서는 달러가 아닌 원화 대출이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이를 이끌 수 있었던 데는 SK지오센트릭이 한국 최초의 석유화학 회사에서 세계 최대 폐플라스틱 재활용 기업으로 거듭나겠다는 ‘파이낸셜 스토리’ 전략과 폐플라스틱 재활용 확대 목표가 주효했다. 대주단으로서는 SK지오센트릭이 제시한 친환경 사업과 달성 가능한 목표에 충분히 공감한 셈이다.
무엇보다 친환경 목표를 평가하는 제3자 인증기관인 DNV가 SK지오센트릭이 제시한 핵심 성과 지표(KPI) 목표에 ‘매우 도전적인(hight ambitious)’이라는 평가를 내렸다. 이는 SK지오센트릭이 설명한 친환경 목표가 매우 원대하고 야심적이라는 표현으로, 목표 달성이 충분히 도전적이지만 환경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수준이라는 의견을 제시한 것이다. DNV는 추후 목표 달성도를 직접 평가해 대주단에 의견을 공유한다. 이번 SLL은 DNV라는 국제적 외부 인증기관의 검증을 받고 성공한 국내 최초의 케이스다.
녹색 채권? 이제는 SLL이 트렌드
이처럼 SLL은 ESG 외부 평가기관이 기업의 지속가능 활동을 평가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대출 거래에 개입하는 것이 특징이다. 대출할 때 ESG 조건과 대출금리의 연동은 물론 대출 기간 동안 제3자 ESG 외부 평가기관이 차입 기업을 모니터링한다. 대주단은 ESG 외부 평가기관이 평가하는 등급에 따라 대출금리를 조정한다. 향후 대주단은 설정한 목표의 달성 수준을 검증하고, 이에 따라 금리도 일부 조정한다. 대주단과 SK지오센트릭이 상호 합의한 친환경 분야에 해당 자금이 쓰이도록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인다.
SK지오센트릭은 친환경 목표 달성도를 투명하게 공개하기로 했다. 자사 홈페이지에 SLL 관련 공간을 개설해 친환경 달성 목표와 추진 계획을 공개하고, 달성 수준을 공유하도록 했다.
기후변화, 환경오염 등 환경·사회 이슈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면서 기업의 영리활동에서 친환경 경영을 요구하는 지속가능 금융이 주목받고 있다. 지금까지는 채권시장을 중심으로 성장해온 지속가능 금융에서 최근 서유럽 등 글로벌 은행을 중심으로 대출시장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지속가능 금융이라고 하면 녹색 채권(green bond)이 대부분을 차지했지만, 최근 들어 지속가능 연계 대출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대출 기관도 이제는 기업에 우수한 재무 실적뿐 아니라 사회와 환경에 미칠 긍정적 파급효과를 기대하는 것으로 보인다. 블룸버그 분석에 따르면, 2025년 글로벌 ESG 금융시장 규모는 2016년 23조 달러 대비 2배가 넘는 53조 달러로 추산되며, 전체 금융시장의 약 30%를 차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앞으로도 기업의 자금조달에 ESG 관련 금융시장의 성장은 꾸준히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기업과 자본시장이 손잡고 ESG 측면에서의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것이다.
이번 SLL 성공은 SK지오센트릭이 적극적으로 친환경 비즈니스로 사업모델 혁신을 추진하고, 그 과정에서 파이낸셜 스토리 전략을 자본시장과 소통해 재무적 성과로 연결된 첫 사례다. 기업과 금융사의 ESG 노력이 사회와 환경에 긍정적 효과로 이어지고, 나아가 지속가능성을 키우는 선순환으로 확산되길 기대한다.
최안섭 SK지오센트릭 전략본부장
관련뉴스